등록날짜 [ 2013-07-30 17:05:40 ]
충남 강경 옥녀봉 금강 유역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
현재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 옛 모습으로 복원 작업 한창
<사진설명> 충남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에 있는 한국 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금강의 유유한 흐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충남 강경읍 옥녀봉 정상 부근에는 허름한 옛집 한 채가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버려둬 폐가나 다름없어 보이는 이곳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 침례교회인 지병석 씨 자택이다.
지병석 씨는 1896년 당시 인천과 강경을 오가며 포목장사를 했다. 그러다 1895년 서울에서 펜윅(침례교 최초 선교사)과 파울링 등 침례교 선교사들을 만나 전도를 받고, 최초 침례교인이 되었다. 강경으로 돌아온 지병석 씨는 선교사들까지 모셔와 이듬해 2월 9일부터 자택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것이 강경침례교회와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시작이었다.
강경침례교회와 펜윅 선교사
점점 교세가 불어난 강경침례교회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내려와 더욱 활발한 복음사역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침례교단 최초 총회가 이곳에서 열리는가 하면, 오랫동안 교회당이 교단 본부 역할까지 감당하는 등 빛나는 시절을 누렸다.
반면에 일제하에서는 전치규 목사가, 6.25사변 중에는 이종덕 목사가 순교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런 역사가 있기에 강경에는 한국 침례교회의 보고라고 할 만큼 소중한 유산이 곳곳에 간직되어 있다. 옥녀봉 지병석 집사 자택은 논산시 향토문화유적 제38호로 지정받은 데 이어, 침례교단에서는 교단 사적지로 지정돼 현재 복원이 한창이다.
미국 침례교단에서 파송된 파울링 선교사와 함께 강경에 들어와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교회를 세웠다.
목조로 지어진 함석지붕 건물은 외벽과 집터 등이 남아 있어 당시 예배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천장에는 그 시절에 발간한 신앙잡지들이 붙어 있다.
말콤 펜윅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 기독청년회에서 교파 소속 없이 독립선교사로 1889년 12월 8일 인천에 도착했다. 재정 후원이 없어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1893년 귀국했다. 그 후 미국 보스턴 클라렌드침례교회에서 한국선교에 관해 알렸고, 그 결과 ‘엘라싱 기념 선교회’에서 파송한 폴링 부부와 미혼인 아만다 가데린이 1895년 한국에 왔다.
이들은 1896년 2월 9일, 폴링 부부, 아만다 가데린, 지병석 씨와 부인 천성녀 씨 모두 5명이 강경 복옥동 지병석 씨 자택에 모여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1900년 펜윅 선교사는 강경, 칠산, 공주를 위임받아 1901년 신명균 목사와 강경교회로 내려와 사역했다. 1906년 10월 6일 강경침례교회에서 역사적인 최초의 침례교단 총회에 해당하는 대화회(Conclave)를 창립하였다. 이 총회에서 펜윅 선교사는 초대 총회장 격인 감독(Directer)으로 선출되었다. 이 총회에서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회’라 칭하니 한국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후 현 기독교 한국침례회 총회인 교단 출발점이다.
그러나 곧 일제 탄압으로 옥려봉 일대 교회 대지 3000평을 1943년 5월 신사당으로 몰수당하여 폐교회 된 것을 8·15 해방이 되자 윤석훈, 라상순 집사와 성도들의 기도로 홍교리에 있던 일본인들의 사찰을 교회당으로 삼아 이종덕 목사를 초대 담임으로 세웠다.
이종덕 목사는 1884년 6월 15일 공주시 이인면 신영리에서 출생하여 1903년 19세 때 독립당에 입당,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임천 주재소에 감금되었다. 펜윅 선교사와 장기영 씨의 도움으로 풀려나 1907년 의병활동을 중단하고 공주교회 내 성서학원에 입학, 최초의 신학생이 되었다.
순교의 피로 세워진 교회
만주에서 8년간 순회목회 후 1945년 해방 후 귀국하여 강경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1946년 9월 강경침례교회 제36회 대화회에서 총회장직에 피선되고 일인독재 교단체제를 민주체제 회중정치로 전환했다. 1949년 총회에서 동아기독교를 대한침례교회로 명칭 변경하기도 했다. 1950년 6.25사변 발발 후 피난을 하지 않고 후배 김장배 목사에게 부탁해 손으로 크게 쓴 명함을 들고 인민위원회 내무서 등을 찾아가 신분을 밝히고 전도하였다.
<사진설명> 논산시는 이곳을 최초 예배가 이뤄졌던 1890년대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사업에 한창이다(왼쪽). 현재 강경침례교회 모습(오른쪽).
이종덕 목사는 9.28 수복 때 퇴각하던 공산군에게 금강 갈밭으로 끌려가 총살로 순교하여 피로써 사명을 다하였다.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강경침례교회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교단 연감 발간 이후 비로소 최초 교회로 인정받았다.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옥녀봉에 자리한 복옥리 137번지 일대를 ‘침례교단사적지’로 지정했으며, 금강 변 순교 현장에 이종덕 목사 순교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4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