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서(5)] 남녀 회중석 직각으로 배치

등록날짜 [ 2013-09-03 11:12:45 ]

처음부터 건물 두 동 합쳐 90도 각도로 본당 지어
한국적 전통과 기독교적 요소 합친 독창성 돋보여


<사진설명> 교회 내부. 설교자 왼쪽은 여성이, 오른쪽은 남성이 자리한다.

전북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에는 ㄱ자 예배당을 보존한 두동교회가 있다. 1923년 박재신의 사랑채에서 시작한 두동교회는 남장로교에 속한다.

흑인 노예 문제로 미국에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장로교회도 남북으로 나뉘었다. 자연히 한국에도 북장로교와 남장로교가 따로 들어왔다. 북장로교는 1885년 언더우드 목사를 기점으로 한국 선교를 시작했고, 남장로교는 1892년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 같은 선발대 7인이 한국에 들어왔다.

교단은 달라도 선교사들은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1893년 한국 남북장로교공의회를 조직하고, 남장로교가 선교할 지역을 충청남도와 전라도로 결정했다. 1907년 남북장로교와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가 모여 한국 최초 교단인 독노회를 조직하여 한국 장로교는 통합을 이뤘다.

익산 두동교회는 군산 선교부 해리슨 선교사가 개척해 세웠다. 1896년 한국에 들어온 해리슨 선교사는 서울, 군산, 전주, 목포를 순회하다 1915년에 군산에 머물며 선교했다. 그때 김정복과 익산 두동리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교회
두동교회 이야기에서 부자 박재신을 빼놓을 수 없다. 박재신에게 시집온 김 씨는 우연한 기회에 기독교에 귀의했고, 당시 손이 귀하던 박재신은 “예수 믿으면 집안이 복을 받고 자식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교회당에 가는 김 씨를 묵인했다.

마침내 아내가 아이를 가졌는데, 만삭으로 먼 길을 걸어 교회에 다니던 모습이 안쓰러워 박 씨는 자기 집 창고에 간이 교회를 차려 예배를 드리게 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다. 박재신이 후원하여 1년 사이 교인이 80명으로 증가하여 박재신이 곳간으로 쓰던 ㄱ자형 창고를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그런데 아내가 교회에 다니며 낳은 아들이 다섯 살 때 죽자 박 씨는 기독교에 회의를 품었다. 설상가상으로 박 씨가 고모상을 당했는데 출상일이 주일이라 삼일장을 못하고 사일장을 해야 한다는 전도사와 의견충돌을 벌여 급기야 박재신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했다.

이에 독실한 신도 20여 명이 채소밭이던 현 교회 자리에 두동교회를 지었다. 때마침 1929년 6월, 안면도 소나무를 실은 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소나무들이 두동리 근처 상당포까지 떠내려왔다. 교인들은 나무를 헐값에 사들여 100여 평 채소밭에 ‘ㄱ’자 예배당을 지었다. 당시 두동교회 성도는 모두 초가집에 살았지만, 교회는 함석지붕을 얹어 당시로는 최신식으로 지었다.

두동교회는 ‘ㄱ’자형 예배당으로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이란 전통을 보여 주며 남녀에게 모두 신앙을 전파했다. 1920년대에는 유교적 유풍에 따라 남녀 자리를 구분하던 경향이 사라지고 있었으나, 두동교회는 1929년에 ‘ㄱ’자형 교회를 건립했듯이 시대를 따르지 않는 독창성이 돋보인다. 남녀유별적인 유교 전통이 무너져 가던 1920년대에 오히려 ‘ㄱ’자형 예배당을 지어 남녀유별이란 전통을 보여 주며, 한국의 토착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기독교와 한국 전통을 잘 살렸다.

남녀유별 시대 상황 반영한 건물
두동교회라는 이름은 두동리에 지어져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두 동을 합해서 만든 교회라는 뜻도 있다. ‘ㄱ’자형 평면 한옥교회로 함석지붕에 홑처마 우진각 형태다.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와 함께 유일한 ‘ㄱ’자형 교회건물이다. 남녀 회중석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서로 볼 수 없게 하였으며 두 축이 만나는 중심에 강단을 시설하여 ‘ㄱ’자가 90도 회전한 평면 형태를 이루게 했다.


<사진설명> 두동교회 외부(왼쪽). 예배 때 쓰던 오래된 풍금(오른쪽).

북서쪽 모서리에 놓인 강단은 한 칸 규모이며 남녀 회중석은 각각 3칸 크기로서 같은 규모다.

내부는 통칸으로 지었는데 전면에서 볼 때 ‘ㄱ’자형 평면 중 남북축이 남자석이고 동서축은 여자석이다. 각각 출입문이 있어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유풍에 따라 동선을 분리하였고, 내부 바닥은 장마루를 깔았으며, 강단과 회중석은 높낮이를 38㎝ 정도 두어 전면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하고 그 중앙에 강대상을 놓았다.

강대상 전면에는 내진 기둥 하나를 세웠는데 다른 기둥은 모두 방주(네모진 기둥)를 사용했지만 이 기둥만은 8각주를 사용하여 차별을 두었다.

현재 있는 본당은 1964년에 새로 건축하였고 2007년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종각도 복원했다. 2011년 6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교회사적 제4호로 지정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5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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