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10-22 10:36:42 ]
황해도 송천리에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세운 교회
현재는 용인 신학교 캠퍼스에 예전 모습으로 복원
소래교회는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 자생교회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같은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서상륜이라는 조선인이 세웠다.
사진설명-성경을 권하는 조선 최초 권사 서상륜.
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
서상륜은 젊은 시절 죽을병에 걸렸으나 외국인 선교사 로스와 매킨타이어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 이름으로 병을 고쳤다.
당시 조선은 대동강 변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사건 이후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머지않아 조선에 선교할 문이 반드시 열리리라 믿어 조선 청년들에게 투자하며 그들과 함께 성서번역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서상륜은 선교사를 도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비롯해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마침내 1882년 3월 24일 심양에서 한글 성경 누가복음 3000권을 최초로 발간했다. 최초로 시도한 한글 성경 번역작업은 서상륜 없이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성경을 로스와 서상륜이 공동으로 번역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성경을 번역한 서상륜은 자신이 번역한 복음서를 안고서 압록강을 건너 고향 의주로 향했다. 그러나 당시는 성서 반입이 불법이기 때문에 중국과 조선을 가르는 국경지역에서 병사들에게 검문을 당해 성경을 빼앗겼다. 천신만고 끝에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병사들이 곧 수배를 내렸다. 다행히 먼 친척 김효순이 도와서 성경 10여 권만을 챙겨 밤에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고향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위기를 느낀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외가가 있는 황해도 장연의 소래(송천, 松泉)로 피신했다. 거기서 그는 자기 가슴속에 몰래 숨겨온 성경을 가지고 외가 친척과 인근 주민에게 복음을 전했다. 소래는 비교적 외진 곳이라 서상륜이 복음을 전해도 제재하는 이가 없었다. 이후 그 마을 전체로 복음이 조금씩 전해졌다. 전도가 점차 활기를 띠자 가정집에서 주일마다 예배도 드렸다. 마침내 1883년 5월 16일, 한국 최초로 외부의 원조나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소래교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사진설명-당시 소래교회 모습.
그 후 소래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1884년 13명, 1885년과 1886년 각각 20명과 70명으로 성도가 늘어나 마을 58세대 중 50세대가 예수를 믿었다. 또 선교사가 돕는 일 없이 순전히 토착민이 헌금을 내서 교회를 건축하였고, 지역 사람들이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서 교회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한국 최초 자생 교회
소래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에 가서 건축자금을 모금하여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서상륜을 비롯한 소래교회 교인들은 “우리가 우리 예배당을 세우는 일에 외국인의 원조를 받는다면 본의에 어긋나며, 후세에 전하는 일에도 떳떳하지 못하다”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언더우드는 그 뜻을 존중하여 미국에서 가져온 석유램프 5개만 소래교회에 기증하였다. 그런데 불빛이 얼마나 밝던지 그 빛이 온 동리를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이렇듯 소래교회는 한국 최초 예배당인 동시에 외국 원조 없이 자생적으로 세운 교회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한편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가 서울 새문안교회를 세울 때 참여한 최초 교인 14명은 서상륜과 백홍준이 전도한 교인이었다. 그 이후 서상륜은 새문안교회 조사(助事)를 담당했고 언더우드 선교사를 도와 선교 초기 권서인(성경을 팔거나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복음 사역에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한국교회 선교역사에 초석을 놓으며 선구자의 삶을 산 서상륜은 1925년 12월 16일 76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으로 갔다. 서상륜은 비록 평신도였지만 장로교총회장으로 엄숙하게 장례를 거행했다. 평신도 장례를 장로교총회장으로 예우한 결정은 전례에 없던 특별한 일이었다.
사진설명-용인 총신대학교 신대원캠퍼스에 복원한 소래교회 모습.
훗날 서상륜이 행한 높은 뜻을 기리고자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를 주축으로 기독교계 인사와 각 신학대학교총장 교수가 뜻을 모아 발기하고 추진하여 2006년 6월 20일 용인 총신대학교 신대원캠퍼스에 『한국기독교선구자 서상륜 기념비』를 건립하고 당시 교회 모습을 복원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3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