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1-21 09:15:41 ]
거듭된 권함이 결국 예수께로
오예지 집사 (여전도회 편집실)
전주에서 친하게 지내다 서울로 이사한 동생이 메일로 동영상을 보내왔다. 잔인한 광경이 담겨 있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이 쇠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한 남자를 심하게 매질하는 장면이었다. 살이 찢기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또 가시관을 그 남자 머리에 눌러 씌웠다.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리고 언덕으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남자가 신음하자 웃고 조롱했다. 악마 같았다. 못 박힌 그 남자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 충격적인 동영상을 통해 예수님을 처음 접했다.
한참 후, 그 동생이 전주 학생회관으로 오라고 연락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동생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성회를 인도한다고 해 마지못해 참석했다. 목사님이란 분이 긴 마이크를 들고 왔다갔다 하며 쉰 목소리로 설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곧바로 나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전도하려 한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다.
그 후, 나도 서울로 이사했다. 동생이 여러 모로 내게 큰 도움을 줬다. 매번 자상하게 챙겨주는 동생이 고맙고 한편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교회에 한번 가보겠다고 했다가 2006년에 등록까지 했다. 전주에서 본 그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 말씀을 듣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만났다. 죄와 허물을 회개했다. 우울증도 치료받았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 새 삶을 살게 됐다.
사랑하는 부모님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두 분 다 나보다 훨씬 믿음 좋은 집사님이 되셨다. 영육이 강건하셔서 오래오래 충성스런 주님의 일꾼으로 사시길 기도한다. 딸에 이어 아들까지 온 식구가 예수를 믿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말할 수 없다. 얼마 전 군입대한 아들이 주님을 더욱 뜨겁게 만나길 기도하며, 우리 온 식구가 주님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령의 사람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담임목사님을 사용하셔서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부족한 나를 충성하게 하신 주 예수께 감사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전도해주고 기도해준 사랑하는 동생 최미화 집사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가족의 포기하지 않는 전도로
이민희 집사 (57여전도회)
스물셋 되던 해에 큰언니(이노희 교구장)가 본격적으로 전도 구애를 펼쳤다. 당시 큰언니는 연세중앙교회 청년회 부장이었고, 가락동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나는 언니의 부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학원 일을 도왔다. 언니가 노량진 성전 가까이로 이사하자 아예 같이 살았다.
그때부터 언니의 전도계획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미술학원 교사는 예쁜 글씨체를 배워야 해”라는 핑계를 대며 교회 자매를 소개해줬다. 물론 글씨쓰기 교재는 성경책이었다. 게다가 집안과 출퇴근하는 자동차 안에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항상 틀어놓았다. 청년회에서 자주 전도심방을 왔고, 우리 집안과 관련이 있는 구역에서는 나를 놓고 합심기도까지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신앙생활에 매여 살다시피 하는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촌올케언니(전홍자 권사)가 전도해 우리 2남 4녀 중 나와 오빠만 빼고 온통 교회에 빠져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는 목사님의 설교테이프를 못 듣게 했다. 청년회 구역예배를 드리러 온 남동생(이영근 목사) 일행을 내쫓기도 했다. 집 앞에 교회가 있었지만 발도 내딛지 않았다. ‘집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고 할 정도로 강퍅하게 굴었다. 그런 나를 위해 온 식구가 기도했다. 어린 조카들까지 밥 먹을 때마다 내 기도를 잊지 않았다.
결혼해서 인천에 신혼살림을 차린 후에 무료해서 집 근처 교회에 다녔다. 그러다가 셋째 언니(이윤희 집사)의 권유로 연세중앙교회 총동원 전도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시끄럽기만 하던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았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될 정도로 은혜를 받았다. ‘이 좋은 예수를 왜 안 믿었나’ 싶었다. 지난 세월이 억울했다.
둘째아이를 임신해 만삭일 때 우리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1년 후 성전 근처로 이사하기까지는 둘째형부(김경철 안수집사)가 서울서 인천까지 차로 데리려 와서 예배와 성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매일 철야기도도 자주 드렸다. 처음 교회 올 때 만삭이던 둘째가 지금 중2학년이 됐다.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섬겨준 형제들이 아니었다면 내 영혼은 어찌 됐을지 그저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친구의 신앙이 부러워서
이정숙 집사 (교회복지부 에바다실)
간호사의 꿈을 안고 서울에 왔다. 간호 실습 파트너인 친구는 핍박을 받으며 신앙생활 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 믿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성장한 후에는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반성이 됐다.
‘쟤는 저렇게 핍박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키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루는 친구가 권면했다. “정숙아, 하나님은 살아 계셔. 교회에 같이 가자.” 진실하게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그 길로 교회에 가서 예수를 진심으로 영접했다. 이후 성경을 깊이 공부하기도 했다. 생전 처음 철야기도도 했다. 거듭난 신앙생활로 믿음을 견고히 다졌다. 그 친구 덕분에 연세중앙교회까지 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나를 전도한 그 친구를 생각할 때면 분명 하나님께서 내게 보낸 천사같다는 생각도 든다.
연세중앙교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죄를 회개했고, 교만과 무지를 깨달았다. 수년간 찬양대에서 주님께 쓰임받고 있다. 최근에는 농아인을 섬기고 싶어 교회복지부 에바다실에 지원해 열심히 수화를 배우고 있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진실로 섬기는 자로 주님께 쓰임받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3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