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1-12 12:00:08 ]
개인에게 무한한 발전과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 보장하지만
피조물(돈)에게 창조자(인간)가 매여 사는 어리석음 없어야
필자가 대학생 시절 “돈돈돈 돈에 돈돈 악마의 금전. 갑돌이하고 갑순이하고 서로 사랑하다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아마 돈 때문에 사랑이나 의리를 배신한 세태를 풍자한 노래 같다. 중세까지 서구에서는 돈을 터부시하고 악마의 배설물처럼 더럽게 생각했다. 중세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업이나 고리대금업을 유태인에게 맡기고 천대했는데, 성경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 하며 돈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사·농·공·상’이라 하여 돈을 다루는 상인을 제일 하층에 두었다. 하지만 돈을 벌고자 노력하고 절약하며 모으는 일은 나쁜 짓이 아니며, 돈 자체가 악도 아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돈은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며, 육신적으로 안락하게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그 자체로 악은 아니지만 돈을 절대시하고, 돈이 삶의 중요한 목적이 되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고, 돈을 벌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미혹에 빠진다. 기독인으로서 올바르게 살려면 돈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돈의 긍정성
돈은 사회가 커지고 경제활동이 다양해지자 물물교환을 순조롭게 하려고 탄생한 자연스러운 매개물이다. 하지만 돈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창조하고 분업을 강제하며 제일 중요한 척도로서 힘을 부여받은 시기는 근대자본주의 이후다. 그 전에는 타고난 신분이나 지위, 교양 같은 인격적 가치가 더 소중했으며 경제활동도 지역 단위와 관습에 철저하게 제한됐다. 예를 들어, 상인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신분 구조상 하층이며, 복식이나 집도 귀족들과 똑같이 할 수 없었다. 귀족 사회 내에서도 높낮이에 따라 땅의 소유나 복식, 집의 크기가 제한됐다. 그리고 외지인이 어떤 지역의 땅을 사거나 돈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는 일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돈은 경제활동에서 보조 역할만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가 자리 잡고 개인이 마음껏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신흥 부르주아가 지배층이 되자 지역 경계를 허무는 거대한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이때 돈은 경제활동을 얽어매는 전통과 전근대적 속박을 끊게 하고 개인을 자율적 존재로 등장하게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돈은 모든 가치를 보편적 척도로 환원하는 마법적 힘을 발휘하여 경제활동에 활기와 자유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중세 농노들이 부를 축적하자 돈을 지불하고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제 신분보다 돈과 지식이라는 새로운 힘을 갖춘 자본가 집단과 상인층이 지배 엘리트로 등장하면서 근대민주주의 사회가 열렸다. 돈이 지역, 신분, 공동체적 관습과 법에 매여 있던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인 사회질서를 깨뜨리자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사회적 이해관계를 창출한 것이다. 봉건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새롭게 도시가 성장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평등한 시장질서와 분업이 자리를 잡았다.
돈의 가장 큰 긍정성은 오늘날도 개인에게 무한한 발전과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점에 있다. 돈을 매개로 합리성을 창출한 자본주의 확립에 기독교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지적이다. 기독교는 노동을 신성시하고, 금욕과 절제를 통해 큰 부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의 표징이자 축복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전파하여 자본주의 질서가 봉건제를 대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중세 가톨릭은 부에 대한 욕망을 죄와 동일하게 생각했지만 기독교는 부를 잘 쌓아 이것을 개인과 사회를 위해 유익하게 쓰는 것이 신자의 도리라는 적극적인 윤리관을 주장했다. 기독교 덕분에 암흑시대인 중세가 무너지고 노동과 직업은 신이 부여한 소명으로, 부와 성공은 신의 은총으로 설명되자 시민계급이 중심이 된 더 발전한 시민시대가 열린 것이다.
돈의 부정성과 우리의 태도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평등한 인간관계 문화는 돈의 긍정성이 발휘된 결과지만, 돈의 긍정성은 그 단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세 시대까지 수공업은 돈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장인이 자신의 기량과 자부심을 발휘한 창조과정이고 모든 사회관계에는 인격성이 전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오로지 돈을 위해 일을 하고, 노동을 통해 인간이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삭막하게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상품 관계가 주축이 되어 모든 가치를 서열화하는 문화가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가치가 실종되어 상품처럼 평가되고 새로운 우열이 생기게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갑과 을의 관계라는 착취현상이 자꾸 사회문제가 되고, 돈 많은 사람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풍토는 모든 가치를 양으로 평가하는 화폐 기능의 극단화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도 가치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우량과 불량 상품처럼 나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인간관계의 사물화 현상이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부의 축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고 사회활동을 위한 수단이었는데, 돈의 비중이 커지자 돈이 경제활동의 목적으로 변질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돈이야말로 수단이 목적이 되는 유일한 상품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짐멜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비극은 인간 정신의 표현인 물질문화가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고 성장시키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인간과 사물이 따로따로 노는 데 있다. 인간의 창조물이 인간을 소외하고, 인간은 상품 질서에 부속물처럼 전락하자 문화는 길을 잃고 우리를 억압한다. 짐멜은 현대문화의 위기를 돈과 분업에서 찾는다. 돈이 가장 가치가 큰 상품이 된 것이 문제다.
돈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모든 가치를 하나의 척도로 평가하는 돈의 속성과 물질적 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탐욕은 우리가 좀 더 지혜롭고 엄격하지 못할 때 돈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진가는 가지고 있을 때보다 잘 사용할 때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가 돈을 목적이 아니라 좋은 수단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돈을 사모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김 석 집사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現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위 글은 교회신문 <4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