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1-13 17:50:04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상대의 처지를 먼저 이해하고
말과 행동에 조심 또 조심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3~15).
‘종노릇하라’란 말은 ‘섬기라(serve)’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섬긴다’는 개념과 ‘종이 된다’는 개념은 서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죽기까지 복종할 책임이 있는 자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우리 성도 모두 그렇게 서로 섬겨야 한다.
<사진설명> 사랑의 실천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삶
진정한 섬김은 예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기까지 대신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위해 그렇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성경은 섬기고 도와주라, 친절과 온유함을 나타내라, 관심과 염려를 표현하라, 동정과 공감을 보내라고 말한다. 진정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웃의 처지에 직접 동참한다. 이것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거창한 일을 하거나 물질로 후원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서로 종노릇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웃을 자신의 일처럼 보살피고 마음을 써 주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1.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영준 형제(충성된청년회 12부)는 주일이면 다리가 불편한 같은 부 소속 자매를 섬긴다. 자매가 교회 버스에서 내려 휠체어에 몸을 실으면, 영준 형제가 하루 동안 자매 옆에서 이동을 돕는 것. 계단이 있는 안디옥성전에서 청년 예배를 드리려면 성전 입구에서 부원들 앉는 자리까지 자매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흰돌산수양관 동계성회 기간에는 식당, 화장실, 숙소 등을 다닐 때 영준 형제가 항상 자매의 다리가 되어 준다. 벌써 한 해 동안 섬김이로 나선 영준 형제 덕분에 직분자들도 마음 놓고 다른 회원들 섬김에 집중하고 있다.
#2. 주일 2부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은 기관 모임에 가려고 구름다리를 지나 대성전에서 월드비전센터로 이동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은 인파가 몰릴 때면 자칫 넘어질 수도 있을 터다. 오성정 자매(충성된청년회 6부)를 비롯한 청년회 충성자들은 노인 성도가 구름다리를 이용할 때 옆에서 이동을 돕고, 교회를 처음 찾은 새신자들을 식사 장소(월드비전센터 코이노니아홀)까지 공손하게 안내한다. 밝고 사근사근하게 안내를 해 주다 보니, 예배 때 은혜 받은 성도들은 각 부서 모임 장소로 가는 길에도 받은 은혜를 풍성하게 안고 간다.
허물을 감싸 안는 사랑
서로 섬긴다는 의미는 자신을 돌보듯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24시간 나를 돌보듯 이웃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기에 이웃을 돌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눈에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돌아보고 사랑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 교회복지부에서 언제나 소외 가정을 위해 반찬과 쌀로 드러나지 않게 섬기는 것도 작은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사랑은 받는 사람에 따라서 크게 느낄 수도 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나무를 심어놓고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 농부가 씨앗을 보면서 그 씨앗이 큰 거목이 되어 새가 노래하고 과실이 열리는 풍경을 소망하듯, 우리도 그 사람을 신뢰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사랑은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무례히 행하지도 않는다. 잠시 잠깐 있는 이 세상, 썩어 없어질 육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혼의 때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종노릇하라” 하시고 바로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고 말씀하신 이유는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진정한 종노릇이 아니라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물고 먹는다는 것은 불화나 싸움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로 서로 침해를 가할 때 쓰는 표현이다. 사랑은 어떤 방법으로도 물고 먹지 않는다.
사랑은 거칠게 비난하지 않는다. 욕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수군거리지 않고, 매도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는다. 사랑은 싸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기도로만 얻어진다.
사랑하면 상대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내 눈에 상대의 허물이 보인다면 내 속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처럼 오직 사랑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주님께 사랑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로 물고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종노릇하면서, 자신을 돌보듯 이웃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4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