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기획①] 조상 제사는 정치 수단의 하나일 뿐이었다

등록날짜 [ 2015-02-04 09:48:46 ]

중국에서부터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말 퍼트려
배우지 못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 수단으로 사용
오늘날에는 ‘효’라는 껍질을 씌워 우상숭배를 정당화해

음력설이 다가온다. 많은 가정에서 조상에게 효도한다는 명목 아래 명절이 되면 제사를 지낸다. 아마 기독교인 중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불신가족 때문에 제사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 제사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신앙을 지킬 것인가로 말이다.

성경은 제사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그렇다. 명절 때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이 귀신에게 절하는 제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방인 제사의 기원
이방인이 제사를 지내게 된 동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 옛날 고대인은 자연의 모든 현상과 변화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공포감을 가졌다. 특히 천재지변 앞에 나약한 인간은 초월자 또는 절대자를 상정하고 삶의 안식과 안락을 기원했다. 하늘과 땅, 태양과 달과 별,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물에 초인적인 힘이나 신통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삶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의식이 생겨났다.

또 사나운 맹수의 공격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힘센 각종 짐승과 나무, 돌에 이르기까지 자기 종족을 지켜 주는 신의 존재로 섬겨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다. 이런 행위가 곧 제사가 발생한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문화와 관습으로 굳어지면서 제사제도가 이어져 오게 된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엇인가 간절하게 바라다 보면 알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신이든 동물이든 우연이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제사제도가 죽은 자에 대한 숭배와 조상을 섬기는 예법으로 변질된 계기는 고대 중국에서 나온 관습에서 비롯됐다. 가정마다 행하는 제사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성리학의 유입에서부터다. 한마디로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리나라 고유한 미풍양속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정치 수단, 제사
죽은 조상을 대상으로 하는 제사의 시작은 이렇다. 중국 주나라에 주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왕으로 칭송받던 문왕의 아들이며, 무왕의 동생이다. 문왕 때에 나라가 대단히 가난했다.

문왕은 처음에 ‘귀덕정치’를 시행했다. ‘덕이 귀하다’ 하니 덕인이 되려 할 뿐, 벼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귀작정치’를 했다. 전부 벼슬하려고 글을 읽으니 나라는 여전히 가난했다. 그래서 ‘귀부정치’를 했다. 그러자 재산은 늘었지만 사람들에게 도덕이 무너져,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는 이들만 늘어나고, 나라까지 망하게 됐다. 그때 문왕의 아들 주공이 나라를 바로잡고자 예를 중시했는데, 그중에서 효를 강조하고자 제사제도를 만들었다. 요약하면, 효를 강조하고자 ‘인간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죽은 부모가 귀신이 돼서 다시 오니, 부모가 살아 있을 때도 잘 모시고, 죽은 후에도 가정마다 부모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온 나라가 시행하다 보니, 왕은 나라가 숭배하고 있는 신에게 제사를 드렸고, 모든 벼슬에 있는 사람들은 삼 대에 이르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고, 서민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부모에게 제사를 하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중국은 이때부터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라나 고구려 때에 특수한 왕에게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국, 고려시대에 걸쳐서 불교가 성행할 때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일은 없었다. 오늘날에도 불교국가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절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속과 유교가 섞여서 후대에 생겨난 특이한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 중국에서 유학의 한 분파인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사당이 생기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이 제사는 조상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특정인물에 대한 제사였다.

그 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학을 조선의 건국이념과 치국원리로 삼았으며, 태조 이성계는 나라의 종교를 고려의 불교로부터 성리학으로 바꾸며 유교를 조선의 국가 종교로 삼았다. 공적으로 문묘제를 지내며 사적으로는 조상에 제사 지내는 것을 본격화했다. 특히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유교의 일반관념은 전통적인 조상숭배 의례와 결합하여 한국인 전체에 보편화한 종교의례가 되었고, 이것의 근거를 효도에 두었다. 그리하여 효도는 생존한 부모에게 국한되지 않고 죽은 후에도 제사 형식으로 계속해야 했다. 

진정한 효로 영혼의 때를 복되게
우리 인생은 누구나 한 번 죽으며 그 후에는 심판을 받는다(히9:27). 죽은 자는 이 세상과 교통할 수 없다. 조상 제사는 타락한 천사인 귀신들이 조상의 모습으로 나타나 경배를 받을 뿐이다. 어떤 이는, 제사를 우리 고유전통 풍속의 하나로 여기면서 “죽은 조상에게 하는 의식만 있을 뿐 진짜 그 조상이 복을 주는 존재로 여기지 않으니 해도 괜찮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제사는 우리의 고유문화도 아니고, 백성을 가르치는 정치 수단의 하나로서 효 관념을 만들어 퍼뜨린 것뿐이다. 아무리 우리 마음이 그저 죽은 조상에게 효도하려는 마음일지라도 악한 귀신은 그 효심을 이용해 절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이다. 귀신은 죽은 조상의 사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한 타락한 천사의 졸개로서 더럽고(막1:26) 귀먹게 하고(막7:32~35) 벙어리 만들고(마10:32) 물과 불에 집어넣고(마17:14~18) 온갖 고통을 주는 악한 영이다(눅4:40~41). 조상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고(고전10:20) 섬기는 것이 된다.

조상 제사가 ‘효’를 나타내는 증거일 수 없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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