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2-18 09:44:57 ]
하나님의 존재는 눈에 보이는 물질로는 절대 표현 못해
우상숭배를 너무도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
예수 그리스도를 견고한 토대로 삼아 영적생활을 해야
<사진설명>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손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을 했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절을 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위이며,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우상숭배에 쉽게 빠진다.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믿음에서 우상숭배로 빠지는 데는 단 한 걸음이면 된다. 우상의 올무에 빠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자신하는가? 영적으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누구든 자신할 수 없다.
우상숭배란,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나 그 피조물이 만들어 낸 것들에게 돌리는 일을 의미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우상숭배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출20:4~5).
이를 어기고 우상숭배 하는 사람은 삼사 대까지 저주를 받는다. 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우상숭배가 근본적으로 잘못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물질적인 모양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본성을 왜곡하는 죄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우상숭배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상숭배는 곧 하나님과 단절
하나님이 베푸신 열 가지 이적에 힘입어 애굽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을 다그쳐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32:4)라고 했다. 급기야는 이 송아지를 섬기는 날을 정하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출32:5)이라고 공포했다.
솔로몬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반기를 든 여로보암도 어떠했는가. 그는 이스라엘 열 부족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 섬기기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신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2개를 만들어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12:28)하고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권했다.
위의 두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우상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을 임의로 형상화한 우상에게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무지(無知)가 낳은 결과였다. 오늘날에는 어떤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를 부정확하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유혹
우상숭배는 나무나 금속, 돌로 만든 형상 앞에 절하는 물리적인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족, 돈, 명예, 권력, 교육과 학위 같은 것들을 성취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부러워하게 하는 영적인 우상숭배가 있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과대평가하고 칭송하는 사람은 우상숭배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비이성적이고 위험한 행위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심각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우상숭배의 은밀한 근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우상숭배는 인간 마음의 본성적인 부패에서 비롯됐다. 아담의 자손이 태어나면서 전염되어 온 여러 모양으로 드러나는 위험한 유전병 가운데 하나가 우상숭배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막7:21~22). 이런 것들이 부패의 샘에서 쏟아져 나온다.
사람의 부패한 마음이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예배가 아닌,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예배를 드리려는 본성적 종교심이 있다.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도움과 디딤돌을 요구한다. 이는 인간의 나태함과 불신앙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들에 돌리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상실하게 한다. 인간의 악한 욕망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고대인은 자기 종족의 번식과 안락을 기원하면서 초월자 또는 절대자를 숭배했다. 따라서 대부분 종교의식에는 신과 성적으로 접촉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도 바울이 우상숭배의 결과가 부도덕한 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것(롬1:18~32)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자연적 본성이 추구하는 너무나 쉽고 넓은 길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신령한 예배는 은혜로만 드릴 수 있는, 자연적 본성이 아주 싫어하는 어렵고 좁은 길이다.
또 우상을 매개로 귀신 마귀 사단역사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마귀의 속셈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유혹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된다.
견고한 영적생활을 영위하며
그렇다면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우상숭배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죽음으로 대가를 지급하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다. 인간은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둘째, 기도생활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는 열쇠요, 사단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다. 기도할 때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처럼 언제나 하나님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기도해야 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고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 때 모든 우상을 멀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구원의 역사를, 견고한 토대로 삼고 그 위에 영적생활을 해야 한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