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6-30 09:43:00 ]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전면적인 감사의 표현
물질의 안락 속에서도 구원받은 은혜 절대로 잊지 말아야
출애굽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키기 시작한 맥추절은, 수확한 곡식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였다. 맥추절의 엄수는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곡물을 수확하게 해 주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 표현이었다. 하지만 감사의 범위는 단지 수확물에 그칠 수 없었다. 곡식을 수확하려면 곡식 심을 땅이 있어야 한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을 소유하기는커녕 애굽에서 사백 년 간 종살이를 했고 출애굽한 후에 사십 년간 광야 생활을 했다. 따라서 곡식 심을 땅을 소유했다는 것은 곧 종살이와 광야 생활의 종식을 의미했다.
따라서 곡식 수확에 대한 감사는 농사와 풍요의 기반이 된 땅을 허락하신 데 대한 감사요, 또 오랜 기간 겪은 종살이와 광야 생활이라는 민족적 수난에서 건져 주신 데 대한 감사다. 더 근본적으로는 뿌릴 씨앗을 주시고 그 씨앗이 열매 맺도록 적절한 자연 조건을 주시며, 경작의 능력을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요컨대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올리는 일은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한 전방위적 감사였다.
전면적 감사
맥추절 감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점은 하나님께 드릴 우리의 감사도 전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그러했듯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도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면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일부분만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활동 전체를 떠받치고 계시다. 죄의 부분을 제외한 우리 삶 전체를 관할하신다.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를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없이는 살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무슨 일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부분’을 찾아가며 ‘사후’에 감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 할 수 없다. 오히려 일의 출발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며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전체 과정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나의 의지를 내려놓는 것이 옳다.
요컨대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새끼손가락 하나 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며,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의탁한다. 그런 사람만이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와 영광을 주께 ‘돌릴’ 수 있다. 그것은 겸손을 치장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감사 고백이며, 그러므로 객관적 진실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수확에 감사하면서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수확이 땅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은 말로만 떠벌리는 허풍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류의 지옥 갈 죗값을 아들의 죽음으로 대신 치른 너무나 황송하고 애절한 진실이었다.
예컨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와 친분이 있다면 그것도 엄청난 자랑거리일진대, 세상을 지은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하려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만큼 사랑했다면, 그 감사와 황송은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천국 영생까지 얻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다.
영적인 수확은 육신의 수확에 비할 바 없이 크고 영원하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합3:17~18)는 고백도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육신의 수확이 없이는 진실로 기뻐하지 못하고 창조자의 사랑과 천국 영생을 수확한 것에 대한 감사도 쥐어짜 내야만 한다면, 우리는 몰염치한 자이기에 앞서 아둔한 사람들이다. 받은 은혜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누가 어떤 고통을 치렀는지를 밝히 안다면 결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 축복의 분량,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고난을 안다면 감사가 메마를 수 없다.
부모가 된 후 자기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노고를 깨닫게 되면, 자연히 부모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영적 수확에 대한 진실한 감사가 자신 안에 없다면, 우리는 먼저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기를 기도로 구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 지난날을 회개해야 한다. 감사의 제목은 신령한 지식이기에 사람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고 오직 성령만이 알려주실 수 있다.
감사를 잊지 않아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1~14).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7~18).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 주신 경고의 말씀이다. 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나안 정착과 더불어, 맥추절을 정해 첫 열매를 올리라 명하신 뜻을 곱씹어 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광야에서와 달리, 정착과 농사 그리고 그에 따르는 풍요가 하나님을 잊고 인간 자신을 과신하는 교만을 키우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우려였다.
우리가 지금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위 말씀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질의 부유와 육신의 안락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또 감사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은혜로 얻은 수확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감사하고 있는가. 맥추감사절에 즈음하여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들이다.
이계룡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4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