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1-11 14:13:25 ]
영혼 구원의 정신으로 전도 활발, 망원동성전으로 이전
전 기관이 돌아가며 주일 저녁마다 감사예배 드리기도
<사진설명> 제1여전도회 감사예배.
구령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성도들이 계속 전도해 연희동 60평 지하 성전이 비좁아지자 1990년 9월 망원동에 200평 규모 지하실 성전을 임대해 이전했다.
개척 4년 만에 성전 지경을 넓히자 윤석전 목사와 전 성도는 더 많은 영혼 구원이라는 비전을 향해 더욱 힘차게 달려나갔다. 또 어느 해보다 감사예배를 자주 드려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렸다.
매주 드린 기관별 감사예배
1990년에는 어느 해보다 감사예배를 자주 드렸다. 주일 저녁에는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일 년 내내 감사예배를 드렸다. 남전도회 3기관, 여전도회 4기관, 청년회 2기관, 학생회, 제직, 찬양대까지 모두 12기관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감사예배를 주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다.
감사예배를 주관하는 기관의 회원들은 윤석전 목사의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에 감사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주께 죽도록 충성하리라는 각오로 뜨거워졌다. 또 “전 회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온전한 감사예배가 된다”라는 윤석전 목사의 성령의 감동된 권고에 따라 감사예배 주관 기관은 정회원에서 관리회원, 신입회원에 이르기까지 전원 예배에 참석하도록 회원 독려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처럼 감사예배를 자주 드리자 자연스럽게 성도의 신앙이 성장했다. 또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고 결산하느라 지난날을 돌아보며 주님 앞에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기회도 됐다.
<사진설명> 청년회 감사예배.
당시 여전도회원 한정숙(현 권사)의 회고다.
“1989년 무렵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어요. 그때는 일 년 내내 주일 저녁마다 감사예배를 드렸죠. 1990년에는 여전도회를 비슷한 나이끼리 묶어 4기관으로 조직했어요. 4기관이 순서대로 감사예배를 주관했는데 담임목사님은 각 여전도회의 실정에 맞게 설교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제1여전도회는 할머니 기관인데 회원 간에 다툼이 있으면 화해의 말씀을 전하셨고, 제4여전도회는 아기엄마 기관이라 성경적 자녀 양육 방법과 시부모 봉양과 남편 섬김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예배를 주관하는 여전도회에서는 모든 회원이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성전 맨 앞자리에 앉아 은혜받았습니다. 또 전 회원이 하나님께 감사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강단에 올라가서 찬양했는데 떨리면서도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이 좋아서 감사예배 드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한번은 남전도회 감사예배를 드리던 중,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에 다녀서 심하게 핍박을 받고 있었어요. 그날 우리 교회 남전도회원들이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충성하고 영광스럽게 감사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니까 세상일에만 파묻혀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남편이 떠올라 몹시 부러웠습니다. ‘내 남편은 언제쯤 교회에 나와 예수 믿고 구원받나?’ 하는 마음에 남편의 영혼이 불쌍해서 주체할 수 없이 울었어요. 그렇게 눈물 뿌린 기도가 응답되어 남편(석인근)이 교회 나와 목사님이 전하시는 설교 말씀을 듣다 예수 믿었고, 지금은 교회 중직이 됐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무보수전도자학교(실천목회연구원 전신)의 시작
<사진설명> 영적 무장 무보수전도자학교(망원동성전).
윤석전 목사는 1989년부터 연세중앙교회 평신도를 대상으로 무보수전도자학교를 시작했다. 하나님께 능력 받아 영혼 구원에 앞장서는 평신도 전도자로 성장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진행한 이 강의에는 우리 교회 성도는 물론 타 교회 성도까지 많이 등록해 은혜받았다. 알고 보니 평신도로 등록해 강의를 듣는 타 교인 중에는 목사가 더 많았다. 목회자에게 맞는 강의를 하려고 1990년부터는 아예 평신도 반과 목회자 반을 구분했다. 이 목회자 무보수전도자학교가 후에 실천목회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윤석전 목사는 목회자 무보수전도자학교를 시작할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목회자 무보수전도자학교 초창기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모의 권유에 못 이겨 억지로 강의에 참석한 목사님이 많았는데 그들이 강의 말씀을 듣는 모습은 가관이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맨 뒷자리에서 한쪽 다리를 의자 위로 쭉 펴고 앉아 ‘저 목사가 뭐라고 설교하나 두고 보자’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든 말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감동대로 한참을 강력히 말씀을 전하다 보면, 그 목사님이 자세를 조금씩 바꿉니다. 어느 틈에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설교를 듣더니, 좀 더 지나면 고개까지 반듯이 들고 듣고, 나중에는 아예 의자에서 등을 떼고 곧추선 자세로 듣다가, 급기야 눈물까지 주르륵 흘리며 말씀을 듣습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처음부터 그렇게 겸손한 자세로 들을 것이지 말입니다. 날 선 검과 같은 하나님 말씀 앞에 어찌 자세를 바로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히4:12~13). 저는 특히 목회자 무보수전도자학교 강의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매우 강하게 설교합니다. 목사로서 목회할 자격이 없으면 그만두라는 식이지요. 그렇게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어찌 제 힘이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제 말이었다면 그 수많은 목사님이 저를 가만히 놔두었겠습니까? 제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예수 이름으로 강력히 말씀하실 때 목사님들이 압도되고 회개하고 변화되고 거듭났습니다. 성령 받은 주의 종이 하는 말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책임지시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