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30년사] 망원동에서 부흥의 초석을 다지다

등록날짜 [ 2016-01-21 09:27:28 ]

청년회가 교회 일꾼의 주역으로 등장해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와 충성 올려 드려


연희동성전에서 망원동성전으로 이전한 후에는 영혼 구원 사역에 가속이 붙었다. 예배 공간만 해도 200평에 달하는 쾌적하고 넓은 성전으로 이전하자 성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전도에 열심을 냈다. 그 결과 성전 이전 1년 만인 1991년 8월 첫 주 예배 참석 인원이 2배가량 불어나 800여 명에 달했다.


<사진설명> 망원동성전 예배 모습.


화요정기철야성회 시작과 청년회 부흥
1991년 1월 8일 화요일 저녁 9시 청년을 대상으로 화요정기철야성회(일명 ‘화정회’)를 시작했다.

윤석전 목사는 세상 유혹에 쉽게 미혹되는 청년들에게 성령 충만하여 믿음을 지키게 하고자 매주 화정회를 열고 청년들의 영적 가치관을 깊이 다뤘다. 특히 ‘죄에 대하여’(시51:1~19)라는 주제로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방종하기 쉬운 청년의 때에 죄를 어떻게 이겨야 할지를 1991년 10월부터 1992년 3월까지 다뤘다.

또 마태복음 26장 40∼45절을 본문으로 기도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선포하는 주옥같은 말씀을 1992년 4월 14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했다. 이 설교를 토대로 쓴 저서 『절대적 기도생활』은 지금까지도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기도하고자 하는 신앙인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이처럼 청년들을 위해 배설한 생명이 넘치는 말씀의 잔치인 화정회에 참석해 양육된 청년들은 연세중앙교회 청년회에서 주요 직분을 감당하는 일꾼으로 성장했다.

화정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윤석전 목사의 영감 넘치는 말씀 선포와 뜨거운 합심 기도, 청년 사이에 영적 교제와 전도 대상자 초청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여 청년회 부흥을 이끌었다. 화정회는 연세중앙교회가 노량진성전을 믿음으로 정복하여 이전한 후 윤석전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는 성회 신청이 쇄도함에 따라 부득불 1992년 6월 이후에는 중단했다.

다음은 김홍태(현 안수집사)의 회고다.

“화정회가 열릴 당시 저는 담임목사님이 인도하시는 각종 성회 시 음향 담당자로서 목사님의 설교 사역에 늘 함께했습니다. 목사님은 지방에서 열리는 성회를 인도하시다가도 화요일이면 화정회 설교를 하시려고 아무리 먼 거리라도 그날 집회를 마치자마자 서울까지 오셨기에 몸이 지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강단에 서서 우리 청년들에게 목숨을 내놓듯 애절하게 화정회 설교를 하셨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다시 차에 올라 성회 중이던 지방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밤새 기도하다가 지친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어 당신의 몸을 바닥에 뒹굴려 가까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먼발치서 한두 번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견뎌 내지 못하는 목회 사역이 누구를 위한 것이겠습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피 쏟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또 예수 몰라 지옥 가는 수많은 청년을 살려 내야 한다는 성령의 강한 역사 속에서, 그리고 청년들의 영혼의 때를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이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말씀을 전해 청년들에게 영적 풍요를 주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이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청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 기도하는 성도들.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 창단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윤석전 목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찬양을 받으시도록 성도들이 마음껏 찬양을 불러도 민원의 소지가 전혀 없는 완전 지하실을 성전으로 택했다. 비록 60여 평에 물 나고 곰팡내로 진동하는 지하 성전이었지만 금요철야예배 전에 온 성도가 함께 찬양할 때는 전문 복음 가수들을 초청해 최고로 은혜로운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다.

또 윤석전 목사는 찬양선교단을 창단했다.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에 젖은 찬양, 영감 있는 찬양을 불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복음 사역을 수종들게 할 목적이었다. 1990년 12월에 만든 찬양선교단의 명칭은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단장 이규연 전도사, 찬양 리더 김명기 전도사, 가수 3명 그리고 드럼, 베이스 기타, 포크 기타로 팀을 이뤘다. ‘아셀’이라는 이름의 율동팀이 함께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선교단은 주일저녁예배, 금요철야예배뿐만 아니라 윤석전 목사가 인도하는 각종 성회와 캠퍼스 노방전도 때도 함께해 찬양했다. 또 1991년 1월 첫 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찬양집회를 열었다. 성도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금요찬양집회는 4월 6일부터 토요일 오후 5시로 옮기고 명칭을 ‘토요찬양집회’라고 했다. 청년들은 자신이 전도 중인 태신자를 토요찬양집회에 초청해 전도의 장으로 활용했다.

‘새 하늘과 새 땅’ 찬양선교단은 1991년 5월 9일부터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했다. 10월에는 찬양집회와 외부 활동 횟수가 늘자 전임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을 조직했다. 4인조 연주팀(드럼, 베이스 기타, 리드 기타, 키보드)과 찬양팀 15명으로 구성해 날마다 성전에서 기도와 찬양을 했다. 전임 선교단원은 보통 오전 9시 20분 예배, 11시까지 전체 기도회, 12시까지 1년 성경 1독을 목표로 성경을 정독한다. 이후 점심을 먹고 1시부터 찬양 연습에 들어갔다.

선교단원의 찬양 자세는 결연했다. 1절을 부를 때 그 진실함으로 이마에서 땀이 흘러야 한다. 2절을 부를 때 구원의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터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내려야 한다. 3절을 부를 때는 세상에 찌든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공로로 영원한 천국 생명을 얻은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는 영혼의 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은 교회 예배는 물론 윤석전 목사가 인도하는 국내외 성회에 함께 다니며 성도들의 마음을 찬양으로 활짝 열어 놓았다. 찬양 중에는 뜨거운 눈물과 회개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다.

한편 1991년 6월 16일(주일) 중고등부는 ‘틴글로리아’라는 찬양단을 조직했다. 단원 16명이 학생 예배와 전도 집회, 중고등부 성회에서 찬양으로 충성했다. 또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 찬양대가 조직되어 중고등부 예배 때 찬양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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