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26 13:09:38 ]
질병으로 몸은 점점 굳어져 가고 육체는 더 힘들지만
함께 신앙생활 하며 천국 소망으로 행복한 나날 보내
인생을 ‘하루’로 표현할 때, ‘가장 깊고 어둔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끔찍한 육체의 질병을 겪고 있는 이일 것이다. 질병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암흑에서 ‘빛’이신 예수를 만난 모녀가 있다. 10년째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이경옥 성도(63)와 그를 병간호하는 딸 송지영 자매(35)다. 질병 탓에 굳어진 얼굴과 마음에 예수로 웃음과 평안을 되찾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대 중반부터 어머니의 손과 발이 돼
10년 전, 이경옥 성도의 몸이 갑자기 둔해졌다.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팔다리는 뻣뻣해졌다. 굼뜬 몸놀림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성도는 병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들었다. ‘파킨슨 병’(퇴행성 뇌질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암 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뜬 후, 갓 스물 넘은 아들딸을 데리고 생계를 꾸려 가려고 5년간 다닌 직장이었다. 이 성도는 남편을 잃은 그날처럼 다시 모든 걸 포기해야 했다.
당시 스물여섯이던 딸 송지영 자매의 꽃 같은 청춘도 그때 멈추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앉지 못하고, 식사를 챙겨 먹지 못하는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새벽에 깨기도 여러 차례.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어머니가 잠에서 깨면, 밤사이 굳어진 어머니의 몸을 힘껏 안아 일으켜 화장실에 모셔다 드렸다. 출근할 때면 송 자매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전화해 어머니께 안부를 물었다.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송 자매의 마음은 온통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향해 있었다. 딸의 이런 지극정성에도 이 성도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경련이 일어났고, 혀도 굳어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이 성도는 딸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실 이 성도는 노량진성전 시절부터 연세중앙교회에 다녔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드문드문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다가 결국 못 가게 된 것이다.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는 송 자매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병든 어머니의 부탁이기에 동작구 상도동에서 구로구 궁동까지 거동이 힘든 어머니를 교회에서 운행하는 버스에 태워 모시고 왔다.
처음 예배드릴 때, 송지영 자매는 예배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예배드리러 온 것이 아니라 오직 어머니를 위해 온 것이어서 설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조는 송 자매를 툭툭 건드는 이가 있었다. 어머니, 이경옥 성도였다. 이 성도는 온 힘을 쏟아 굳어진 팔을 간신히 뻗어 딸을 깨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힘든 상황인데도 저를 자꾸 깨우셨어요. 귀한 하나님 말씀을 놓치고 있는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였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니까 차마 졸 수 없었어요.”
예배드릴수록 송 자매의 닫힌 마음이 점점 열렸다.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려오고, 예배 도중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교회에 다닌 지 2년이 지날 무렵에는 이 성도의 상태가 점점 호전됐다. 몸의 굳음이 덜하고, 경련이 줄었다.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의 나아진 모습을 보면서 송 자매에게도 믿음이 조금씩 생겼다.
‘이렇게 좋아진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걸까?’
하지만 믿음의 여정이 순탄지만은 않았다.
질병에 우울증까지 겹친 어머니
하루는 송 자매가 근무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급히 울렸다. 집이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싱크대에 턱을 찍힌 것이다. 입술 아랫부분이 찢어져 피가 쏟아진다고 했다. 송 자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송 자매의 급한 모습을 보고 엑셀을 세게 밟았다. 교차로 사거리에서 빨간 정지 신호로 바뀌려는 아슬아슬한 찰나 택시는 그대로 직진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급히 달려왔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아아아악~”
급브레이크 소리와 절규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하마터먼 두 차가 충돌할 뻔했다. 택시를 타고 있던 송 자매는 심장이 덜렁덜렁했다.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믿음이 없었다면 내게 왜 이런 일만 생기나 하며 이겨 내지 못했을 거예요.”
어떤 날은 어머니가 접시를 들고 가다 넘어져서 깨진 접시에 오른팔 근육이 크게 찢겼다. 의사는 “상처가 조금만 더 깊었으면 팔 신경이 끊어졌을 것”이라며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오른팔 장애를 입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사건사고보다 송 자매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이 성도는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파킨슨 병에 걸린 이후 집에만 있어야 했다. 활동량이 줄어들자 몸무게가 48kg에서 70kg대로 늘었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으니 무엇이든 금세 포기하게 되고 마음은 점점 우울해졌다. 굳어 버린 얼굴 근육 탓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성도는 점점 지쳐 갔다. 결국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항우울증 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송 자매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신앙으로 되찾은 행복
절망을 넘어설 때마다 인생은 다시 시작된다. 예수를 만날 때마다 삶은 변화한다. 송 자매의 삶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년 반 전부터다. 2년 전, 청년대학 연합 동계성회에서 성령이 충만해져 방언은사를 받은 후, 영혼의 사정을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는 진정한 영적 기도를 하게 됐다.
그 후 어머니는 스스로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게 회복했다. 요즘에는 혼자서 택시를 타고 삼일예배에 올 정도다. 예전에는 경련 증상이 있어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렸는데 떨림도 줄어 지난해부터는 여전도회 모임에도 참여한다. 그 덕분에 주일 온종일 어머니 곁에 붙어 있어야 했던 송 자매가 한결 자유로워졌다.
“어머니가 아프신 중에도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가 저를 전도하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도 캄캄한 어둠 속 인생을 살고 있을 거예요. 주님을 알게 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해요.”
질병으로 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그 대신 모녀는 예수를 만났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다시 기도할 힘을 얻고, 활짝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송지영 자매. 고통을 통해 주님의 구원의 빛을 만난 두 모녀에게 주님께서 늘 함께하시리라 믿는다. 예수로 말미암아 누구보다 화사한 미소를 선사할 모녀의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
손미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7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