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9-27 10:53:10 ]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음행과 우상숭배, 그리고 성도 간의 분열로 어려움에 처하자 편지를 보내 도우려 했다. 고린도전서 10장은,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방신 제단에 참여해 우상숭배를 하자 바울이 책망하며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한 내용이다.
고린도전서 10장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명절에 행하는 차례(茶禮), 혹은 죽은 조상의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祭祀)를 성경을 근거로 판단해 보려 한다.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서 일어난 우상숭배 문제를 다루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에서 행한 우상숭배 사건과 비교해 성경적인 기준을 세웠다.
‘고린도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해 세워진 교회가 고린도교회다. 고린도(Corinth)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유럽 남단에 있는 항구 도시다. 유럽에 속한 고린도는 문화와 풍습 면에서 아시아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각종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거리낌없이 행해졌다. 우리나라도 항구 도시에서는 무속 행위를 심하게 하는 것과 같다. 고린도 지방에서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고사를 지내는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항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랜 전통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전에 하던 습관대로 우상 제사에 참여하거나 제사 음식을 먹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신에게 하는 제사 행위가 아니라 그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어떤 상황일지라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제사하는 일이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하나님께서 크게 노여워하시니 멈추라고. 이스라엘 백성은 너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멸망당한 일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한 악한 일 네 가지를 차례로 거론했다. 곧 우상숭배, 간음, 하나님 시험, 원망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7~12).
하나님께서 이런 가슴 아픈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신 목적은 후대에 거울로 삼아 경계하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무슨 일이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우상숭배만큼은 하나님께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십계명 중 첫번째 계명으로 주셨으니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전10:14~15).
모세 시대에 광야에서 일어난 일과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 지방에서 일어난 일은 대상도,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지방에서 행하는 풍습을 우상숭배로 규정하셨다.
우리나라에서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일이나 조상 기일에 제사하는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제사를 지낸 것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로 여기신다. 우리가 조상에게 하는 제사가 단순히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변명해도, 결국 제사 자체는 우상숭배라는 말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다. 우리의 가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성경이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다 보면 때로 세상 가치관과 부딪칠 때가 있다. 바로 명절에 조상에게 하는 차례나 조상 기일에 지내는 제사 등이다.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은 실제 조상의 사후 존재가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분노하신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제사를 거부하면 자신도 모르게 악한 영이 만든 세상 풍습을 좇는 부모나 형제가 거세게 핍박한다(엡2:2).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
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명절에 하는 차례는 조상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고전10:20). 그것은 귀신이 조상을 내세워 자신에게 절하도록 교묘히 위장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성경은 귀신이 사람의 사후 존재가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바로 천국에든 지옥에든 간다(눅16장). 귀신이 되어 세상에 떠돌아다니지 않는다. 따라서 죽은 자의 영혼은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람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부모나 조상이 죽어서도 자신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투영한 허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귀신과 교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고전10:20~22).
우리가 만일 제사를 지내면 우리는 귀신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가 되고 만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말이 과연 누가 기뻐할지를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이 가장 옳은 것이며, 그 기준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다. 설사 그 기준이 나의 기준과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49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