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5-09 15:44:03 ]
치매 앓는 큰어머니와 척추협착증 노모 함께 모시며
인생 마지막 꼭 예수 믿고 천국 가시도록 정성스럽게 섬겨
힘들 때 있지만 예수 십자가 사랑 알기에 매일 감사 넘쳐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늙고 연약해져 가는 우리의 부모님. 형편만 되면 내 집에 모시고 싶지만, 연세가 아흔을 넘고 백 세에 가까우면 봉양하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환경과 핑계를 뒤로하고 87세 친정어머니와 95세 친정 큰어머니를 내 집에 모시면서 효를 실천하는 이가 있다. 바로 이영희 집사(49)다. 남편 박여생 집사(50)는 두 분을 섬기는 일에 묵묵히 한마음 되어 준다. 그리 길지 않을 두 분의 여일(餘日), 막차에 올라탄 듯한 구원 열차에서 절대 내리지 않고 천국까지 가시도록 온 맘 다해, 온 힘 다해 섬기겠다고 고백하는 이영희 집사를 만나보았다.
친정 어르신 두 분을 모시기까지
이영희 집사가 친정어머니에, 친정 큰어머니까지 겸하여 모신 지 어느덧 4년째다. 열 남매 중 여덟째인 그가 친정 어르신들을 모시게 된 데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이영희 집사의 친정 큰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시집을 왔다. 신혼의 단꿈을 꾸어보기도 전에 신랑이 노역에 끌려갔고,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큰어머니는 재가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이 집사의 아버지는 셋째 아들이지만, 큰 형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둘째 형님도 강제노역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종갓집 장손으로 살게 됐다. 홀몸으로 시부모를 의지하고 살던 큰어머니는 이 집사의 아버지가 장가들어 한집에 살면서 자식들을 낳자 조카들을 자기 배 아파 낳은 친자식처럼 알뜰살뜰 키워 주었다. 그렇게 이영희 집사의 열 남매는 넉넉하고 따뜻한 두 어머니 품에서 건강히 잘 자랐다.
종갓집 장남으로 살게 된 이영희 집사 아버지는 유산을 많이 물려받았으나 해마다 십여 차례씩 지내는 제사에 시제까지 치르느라 평생 우상숭배에 묻혀 살았다. 열 남매 생일 때면 음식을 차려 놓고 삼신에게 늘 빌었다. 시시때때로 제사 음식 장만하랴, 그 큰살림에 농사일하랴, 자식들 돌보랴, 두 어머니는 잠시도 허리 펼 틈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았다.
부유한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란 이영희 집사의 오빠들은 사업을 벌였다. 이 집사 아버지는 재산을 담보 걸어 자식들을 도왔지만, 결국 사업이 부도를 맞아 어려움이 몰아닥쳤다. 아버지는 한창 어려운 시절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 두 분만 고향인 경남 산청에서 조금 남은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생계를 이으셨다.
두 어머니가 점점 연로해지자 경남 진주에 사는 이 집사의 언니가 두 분을 모셨다. 어느 날 10남매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영희 집사가 말했다.
“두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면 언제든지 제가 모실게요.”
1년 후, 언니가 도움을 청해 이영희 집사가 두 분을 서울로 모셔 왔다. 그게 4년 전이다. 당시 이 집사네는 노인 두 분을 모실 만큼 집이 넓지도,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영희 집사와 남편 박여생 집사는 그저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다. 한꺼번에 두 분 어머니께 예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해 구원받으시게 할 너무나 귀한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시어른들도 큰아들 부부의 결정을 허락해 주시면서 “두 어머니를 잘 모셔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다.
치매와 척추협착증을 앓는 두 어머니
이영희 집사의 일과는 늘 두 어머니께 매여 있다. 건강하면 모시기가 훨씬 수월할 테지만, 3년 전 큰어머니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설상가상 어머니도 척추 협착증이 와서 심한 고통을 호소하셨다.
두 분이 연약해질수록 이 집사 부부의 섬김은 더욱 각별해졌다. 예배드리러 교회 가는 날이면, 치매를 앓는 큰어머니가 행여 길을 잃을까 봐 이영희 집사는 큰어머니의 손을 꽉 잡고 걸음을 뗀다. 척추협착증 탓에 조금도 걷지 못하는 어머니는 남편 박여생 집사가 업고 계단을 내려와서 다시 휠체어에 태워 교회로 이동한다.
4개월 전부터는 척추협착증이 악화해 어머니는 누워만 계신다. 예배 시간이 돼도 교회에 못 가시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신다. 혼자서는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신다. 행여 욕창이 생길까 두려워 이 집사는 자주 자세를 바꿔 드린다. 물론 대소변도 받아 내야 한다. 목욕할 때는 박여생 집사가 욕실까지 모셔다 드리고, 이영희 집사가 싹 씻겨 옷을 입혀 드리면, 박 집사가 다시 침대까지 옮겨 드린다.
누워만 계시니 소화가 안 되고 음식물도 점점 씹을 수 없게 됐다. 밥에서 죽으로, 죽에서 미음으로 식사가 점점 약해졌다. 친정어머니께 미음을 끓여 먹여 드리랴, 큰어머니 진지 챙겨 드리랴, 그렇게 두 어머니 식사를 수종들다 보면 끼니마다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하루하루 고된 섬김의 연속이지만, 두 분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은혜받는 시간은 잠시도 놓칠 수 없다. 이영희 집사는 두 어머니의 귓가에 온종일 윤석전 담임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틀어 놓는다. 혹여 치매 탓에 구원의 확신을 잊을까 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반복, 또 반복해서 전해 드려 심령에 각인시켜 드린다.
<사진설명> 척추협착증 탓에 거동할 수 없는 87세 친정어머니와 치매 앓는 95세 친정 큰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영희·박여생 집사 부부. 고된 섬김에도 주님 사랑 덕분에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고 고백한다.
자녀들에게도 본이 돼
효도하는 부모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라서 자기들도 보고 배운 그대로 자기 부모님을 공경하게 된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이영희 집사 큰딸이 말했다.
“엄마, 나중에 혹시라도 엄마 아프면 엄마가 할머니를 모신 것만큼 나도 엄마에게 잘할게요.”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 두 어머니를 모시느라 사십 후반에 누릴 생활의 느긋한 여유는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자신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두 영혼을 섬겨 천국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주님께 감사뿐이다.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몰랐다면, 두 어머니를 모실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더군다나 저는 열 남매 중 여덟째여서 절대 그럴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비록 몸은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주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그 고통에 어찌 감히 비길 수 있겠어요.”
예수님 때문에 효를 알았고, 예수님 때문에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었고, 예수님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이영희 집사. 한 생이 끝날지라도 영원한 이별이 아닌 천국에서 기쁨의 재회를 할 것이기에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생을 이어 갈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을 낳아 길러 주시고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두 어머니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주님 주신 사랑으로 섬기고 또 섬기리라 다짐한다.
이 모든 일을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린다.
/동해경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2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