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효도간증] “험난한 인생길이었지만 어머니와 저, 주님 은혜로 잘살아왔네요” 外

등록날짜 [ 2020-05-09 11:30:03 ]

결혼 2년 만에 남편 여의고 홀시어머니와 40년 넘게 살아

예수님 은혜로, 시어머니와 위로하며 산 지난날 감사

치매 걸려 변해가는 노모 볼 때마다 속상하고 안쓰러워

천국 가시기를 소망하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남궁순애 권사(1교구)


우상숭배 시댁과 예수쟁이 며느리

시집가면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고 하던 시대였다. 갓 시집온 예수쟁이 며느리는 시댁의 가풍에 가타부타 할 수 없었고, 우상숭배 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속으로만 애를 끓였다. 남편 생일마다 삼신할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시어머니는 방마다 상을 차리게 했고 설이나 추석 때면 차례상을 차리는 데 정성을 쏟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금식 기도를 하면서 시댁 가문의 우상숭배가 끊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결혼한 지 2년 지났을 무렵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버스와 충돌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고, 둘째아이를 임신한 지 5개월째였다. 남편의 비보를 듣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호흡조차 느낄 수 없었다. 남편이 떠나고 좌절과 눈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늪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한 가정의 가장, 며느리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족을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내야 했다. 젊은 새댁이 혼자살기에는 험한 세상이라며 주위 분들이 새출발하라고 권했지만 예수님을 신랑 삼고 의지하며 시어머니와 아이들을 보살폈다. 보란 듯이 열심히 살아보리라 마음먹고 홀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이를 악물었다.


27년 전 시어머니랑 망원동 성전에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시댁에 우상숭배가 겨우 끊어지고 어머니도 교회에 나오셨지만 신앙은 늘 수박 겉핥기셨다. 그러다 27년 전, 당시 망원동성전에 있던 연세중앙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됐다. 성도 영혼을 사랑해 애절하게 전하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자 ‘내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구나, 내가 영적으로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감동을 받아 시어머니를 모시고 예배드리러 다녔다.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예수를 뜨겁게 만난 어머니는 아침 드시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교회에 가서 기도하시고, 저녁이면 나와 함께 매일철야예배에도 빼놓지 않고 가셨다. 어머니와 신앙적인 대화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병원 한 번 안 가시고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5년 전 92세 연세에 치매4급 판정을 받았다. 총명하던 분이 기억을 자꾸 잃어가셨다. 해를 거듭할수록 증세는 심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관절이 부러져 수술받은 후로는 치매 증세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금방 양치하고 나와서도 화장실에 들어가 열 번, 스무 번 입을 헹구시고, 문이 열려 있으면 자꾸 집을 나가셔서 어머니를 찾아 헤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교회에서도 잠깐 한눈팔다 보면 어머니가 사라져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를 수차례.


올해 72세인 내가 97세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힘들어 보였는지 자녀들은, “요양원에 모시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하지만 40년 넘게 모셔오면서 어머니와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정이 들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식들에게 “그런 말 다시는 꺼내지 마라”며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절대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끝까지 모시며 천국 보내드릴 것이다”라고 자녀들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를 모시다 너무 힘들 때면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 튀어나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자꾸 어린아이처럼 변해가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속상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위로자이신 주님께 기도한다. 가엾은 어머니가 건강히 잘사시다가 꼭 천국 갈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하며 끝까지 섬기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어머니는 동병상련의 친구이자 동반자

남편 없이 40년 넘는 홀로서기 삶이 외롭지 않았음은 예수님 덕분이다. 또 고부간에 서로 의지해가며 살아온 사랑하는 시어머니가 계셨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시어머니 보필하랴 자녀들 키우랴 신앙생활에 마음을 쏟다보니 세월은 유수 같이 흘렀다. 눈물의 기도로 자란 두 딸은 속 썩이는 일 없이 착하게 잘 자라주었다. 큰딸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과 결혼해 해외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작은딸은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과 결혼해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


이젠 내 나이도 70대, 기억을 잃어가는 구순의 어머니를 바라보니 젊은 시절 더 잘 모시지 못했다는 회한에 마음 쓰리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의 부음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남편을 잃은 내 슬픔이 너무 컸기에 당시 자식 잃은 시어머니의 아픔은 헤아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심장을, 나는 내 몸의 반쪽을 잃은 뼈아픈 허망함과 슬픔을 오직 신앙의 힘으로 견뎌낸, 우리 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어느새 내 눈에 한가득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말씀드린다. “어머니 험난한 인생길이었지만 어머니와 저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살아왔네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어머니, 내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어머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애절해진다.


주님 은혜로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히 살아가고 있다. 절망의 늪으로 한없이 빠져들 때마다 손 내밀어 나를 이끄신 주님. 일거수일투족 내 삶을 인도하신 주님, 내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동해경 기자



“엄마, 예수 안에서 우리 식구들 하나돼 행복해요, 건강하시길 기도해요”


3년 전 친정어머니 모시고 교회 와서 생명의 말씀 듣고 기도하자

믿음 생기고 건강해지신 엄마, 80평생 가장 평안한 때라고 하시니

내 생애 어느 순간보다 행복하고  예수 안에 하나돼 감격스러워



김애연 협력권사(6교구)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 사이가 소원해 집안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동네사람들도 다투는 소리를 듣고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딸 부잣집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돕느라 힘든 기억이 많다. 그러나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맏이니까 당연히 집안을 돌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 마음 의지할 곳이 없어 절에도 기웃거렸고, 교회도 다녀봤지만 종교생활만 하다가 발길을 끊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회사 앞에 성당이 있어 10년 넘게 다녀봤지만 마음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주님의 은혜로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오랜 세월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녀 봐도 마음에 차지 않고 평안하지 않았다.


3년 전, 문득 자녀들이 흰돌산수양관 동·하계성회에서 은혜받고 온 게 생각났다. 그해 12월 연세중앙교회에 왔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었다. ‘아, 여기구나! 주께서 내 영혼 살리려 인도하신 곳이 이곳이구나.’ 어머니도 우리 집 근처에 사셔서 모시고 같이 예배드리러 와서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을 처음 듣고 “저 분이 진짜여, 저 분이 진짜 목사여”라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영적으로 자유하고 평안해지신 엄마

우리 가정은 악한 영의 역사를 자주 체험했다. 어머니 조상 중에 무당이 있어서 어머니가 여러 번 귀신들려 힘든 일을 겪기도 했다. “귀신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며 어머니는 20년 넘게 고통을 받았다. 연세중앙교회에 오고 나서 그런 일이 줄었지만 종종 그런 역사가 일어날 때면 평소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조금씩 알아갔기에 불쌍한 우리 어머니 손을 부여잡고 애절하게 기도해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몰아내며 이겨나갔다. 자식으로서, 구원받은 성도로서 어머니를 마음 다해 섬기고 싶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어머니는 점점 예배드리기를 사모하셨다. 하나님 말씀에 은혜받고 그 말씀대로 살고 싶어 난생 처음으로 십일조와 주일예물도 하셨다. 먹던 약도 점점 줄이셨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힘이 생겨서 “팔십 평생 이렇게 평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며 좋아하셨다. 또 어깨, 허리,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를 못했는데 믿음을 갖고 예수 이름으로 질병, 저주, 악한 영을 몰아내는 기도를 하니 몸과 마음에 평안을 찾았다. 이렇게 눈에 띄게 엄마가 건강해지고 행복해하시니 나도 내 생애 어느 순간보다 지금이 행복하다.


영혼의 때가 복되도록 섬기고 싶어

천정어머니가 연세가 들어가심에 따라 어머니 영혼의 때를 위해 영적생활 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마음을 쏟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온가족이 연세중앙교회 대성전에서 예배드렸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고령이라 고위험군에 속하셔서 교회에 못 가시고 집에서 예배드려야 하니, 어머니 댁에 가서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 댁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집안에 가전제품 작동이 안 된다고 하면 얼른 가서 고쳐드리고 반찬도 맛있게 만들어다 드리고,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게 드리려 애쓴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지만, 어머니가 건강하게 신앙생활 잘하시다 영혼의 때에 천국 가시도록 교회에서든 집에서든 항상 섬기고 싶다.


교구 직분자 분들도 어머니를 섬겨주셔서 감동받는다. 어머니는 코로나 사태 이후 집에서 USB로 설교 말씀을 들으며 지내시는데, 교구장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말씀 파일을 갈아 끼워 주신다. 교회에 못 가시니 집에서 말씀을 온 종일 켜놓고 들으신다. 말씀을 이렇게 온 종일 들으시니 몸과 마음이 좋아지신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남편도 지난해 한마음잔치 때 전도해 우리 교회에 등록했다. 새가족남전도회에서 새가족교육 잘 받고 올해 남전도회로 올라왔다. 우리 가족이 예수 안에 하나 되다니! 주님의 은혜다. 예전처럼 온 가족이 하루빨리 성전에서 예배드리길 기도하고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어려서는 힘든 일이 많았지만, 예수 안에 가정이 하나 되니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하다. 이 모든 일은 모두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부족한 내게 간증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오예지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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