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5-16 12:07:10 ]
4년 전 패혈증으로 쓰러지신 친정아버지 복음 듣고 평안히 소천
친정어머니 서울 오시면서 “이젠 딸 집에서 하나님만 믿겠다”
이젠 하나님 은혜로 건강 되찾고 동네 친구분에게 복음 전하셔
왼쪽부터 조인숙 집사와 친정어머니 김용희(83) 성도, 남편 허경환 집사.
우리 가족 얼굴 모두 환해져
조인숙 집사(4교구)
불교신자 친정아버지 임종 전 복음 전해
친정아버지가 패혈증으로 경북 상주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영혼의 때에 꼭 천국 가시도록 복음을 전해야 했다.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남편은 2년, 나는 1년 남짓할 때였지만, 천국과 지옥이 정말 확실히 믿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동공이 다 풀려 눈이 허공을 향하였고, 말을 걸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 남편이 친정아버지의 차디찬 손을 잡더니, 귀에 대고 예수를 전했다.
“예수 십자가 피 공로를 믿지 않으면 천국 갈 수 없어요. 장인어른의 죄를 예수님이 다 사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순간, 초점 없던 친정아버지의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남편의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쳤다. 아버지는 사위가 전하는 복음에 집중하는 듯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친정아버지는 불교신자셨다. 집안 형제 중에 승려가 있을 정도로 집안 어른 대부분이 불도를 따랐다. 어머니도 절을 짓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불교에 골몰하셨다. 그러다 6년 전, 두 분께 치매가 왔다. 합병증도 따라왔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다가도 면회 시간마다 남편이 전하는 복음 소리에 반응하고 들으셨다. 가족 중 누군가는 “돌아가실 분을 왜 그렇게 귀찮게 하느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영접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친정아버지의 차갑던 손발에 온기가 돌았고 검게 변한 피부가 제 색으로 돌아왔다. 굳었던 팔다리도 부드럽게 움직이자 모두 놀라워했다.
집안 식구들 설득해 기독교식으로 장례
사실 친정 부모님은 두 분 다 치매기가 있어 전도할 생각을 못 했다. 부모님께 복음을 전한들 알아들으실까 싶었다. 가끔 복음을 전하긴 했어도 귀담아 들으신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는 아버지께서 남편이 전하는 복음을 다 듣고 계시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임종을 앞두고는 아버지 피부가 뽀얘졌고, 평안하게 숨을 거두셨다. 천국에 가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장례 절차를 상의하던 중 내가 먼저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릅시다”라고 못 박았다. 동생들은 반대했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친정엄마가 오랜 세월 서울과 대구를 오르내리며 간병한 나를 인정해 내 간절한 청을 들어줬고,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집안 식구들도 아버지의 평안한 죽음과 조용하고 깨끗하게 치르는 기독교식 장례를 지켜보았다.
상주에 내려오기 전 교회 식구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더니 불교신자인 집안 어른들이 사정상 병문안을 오지 못했다. 임종 직전까지 아버지께 예수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받지 않은 것이다. 모두 주님의 은혜다.
연세중앙교회 남전도회원들도 멀리 경북 상주까지 와서 조문하고 일을 도와주었다. 너무도 감사하고 감동됐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마치 천국잔치가 벌어진 듯 느껴졌다.
우리 집으로 모셔온 친정엄마도 예수 영접
아버지 장례 후 친정어머니를 서울 우리 집에 모시고 싶었지만, 안 오시려고 했다. 할 수 없이 남편과 기도하며 1년 넘게 대구와 서울을 오갔다. 치매, 당뇨,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리는 친정어머니를 돌봤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친정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됐다. 어머니는 상경하시기 전에 우상숭배 하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제 딸 집에 가면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고 주위 분들에게 확실히 뜻을 밝히셨다.
어머니가 서울에 오시자 놀라운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 듣기를 좋아하시더니 오랜 세월 고통받던 불면증이 즉시 사라졌다. 요즘은 우울증과 치매 증상도 거의 없으시다. 잘 걷지도 못하던 엄마가 상주 동생네에 가셔서는 금산 정상까지 오르셨다. 평생 산 정상에 한 번 오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83세 고령에 꿈을 이루신 것이다. “건강을 되찾은 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시며 요즘은 동네 친구분에게 예수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신다. 하나님께서 어머니를 전도의 도구로 귀하게 쓰고 계신 듯하다.
친정어머니를 정성껏 섬기면서 우리 가족 얼굴도 모두 환해졌다. 어머니는 밤에도 꼭 기도하고 주무신다. 부모님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체험하니, 나도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안 되는 것은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는, 든든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오늘도 친정엄마 모시는 것이 행복하고 힘이 난다.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김은숙 기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나님의 계명은 내게 큰 축복
중국서 신앙생활 하시던 친정어머니 건강 나빠져 오빠가 모셔 와
마음껏 기도하시면서 믿음을 회복하시고 건강도 많이 좋아지셔
남편도 6남매 중 막내이면서도 부모님 모시며 천국 보내 드려
최옥주 성도(동탄연세중앙교회)
중국 하얼빈에 살던 친정어머니는 젊어서부터 폐 기능에 문제가 있어 고생하셨는데 여든이 넘으시면서 신장에도 이상이 생겨 오빠 부부가 사는 안산으로 오셨다. 오빠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어머니를 모시기 어려운 데다 둘 다 비신자여서 중국에서 권사 직분을 받고 오래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를 신앙적으로 섬기기 어려웠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오빠가 주일마다 교회에 모시고 갔지만, 같이 예배드리면서 세심하게 돌봐 드리지 못하니 차츰 신앙이 시들해지시는 듯했다. 어머니 영혼의 때를 위해 내가 모시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다닐 교회가 마땅찮았다.
수원에 살면서 2~3년간 유튜브로 연세중앙교회 설교 말씀을 들었다. 예수, 천국, 지옥, 회개, 기도를 부르짖는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으며 내 영혼이 점차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윤 목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영혼의 때를 위하여’라는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츰 바로 알게 됐다. 영혼의 때가 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앙을 최우선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다 어머니를 빨리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4월, 연세중앙교회 오산성전(현 동탄연세중앙교회)을 찾아가 보려고 집을 나섰다. 초행길이라 오산 버스터미널에서 버스 노선도를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다. 난생처음 온 낯선 곳인데 누가 내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일까. 친절해 보이는 인상에 경계를 풀고 “연세중앙교회 오산성전에 간다”고 했더니 “아 그러세요. 나도 연세중앙교회 성도인데 지금 오산성전에 가니 같이 가요”라고 했다. 그분에게 안내받아 오산성전까지 무사히 도착해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머잖아 동탄에 새 성전이 세워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앞으로 이 근처로 이사해서 성전 근처에서 살고 싶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자 그분은 바쁜 일을 뒤로 미루고 “지금 가까운 부동산에 함께 방문해요”라고 했다. 그분이 앞장서고 나는 뒤따랐다. 아는 사람이 부동산을 한다기에 갔더니 그분도 연세중앙교회 교인이었다. 그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건축 중이던 동탄연세중앙교회 근처에 집을 구해 이사했다. 이후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내 영혼이 살아났다. 서로 기도해 주는 동역자를 만나 세심하게 섬겨 주는 것에 감동받고, 무엇보다 내 영혼이 듣기를 갈망하는 영적인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나만 행복할 수 없어 친정어머니도 우리 교회로 인도했다. 어머니는 연세중앙교회에 와서 교구장님들이 기도해 주시고 예배드리다 은혜받으시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이제는 약국에서 약만 처방받아 드실 정도로 좋아지셨다. 오빠 집에서 자유롭게 기도생활을 못 하다 보니 방언 기도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동탄연세중앙교회에서 마음껏 기도하시면서 믿음도 회복하셨다. 이번 ‘전 성도 40일 그리고 10일작정기도회’도 같이 참가해 오전과 저녁 두 시간씩 집중적으로 기도생활을 하고 계신다.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하나님 은혜요, 내게도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생전 마음껏 신앙생활 하시다가 천국에 보내 드릴 수 있는 것이 자녀의 도리며 나에게 주신 섬김의 기회다. 남편이 6남매 중 막내였는데 형제간 순서에 상관없이 시부모님을 모셨고, 모두 예수 믿으시고 천국에 보내 드렸다. 어느 날 아들이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없다”고 했다. 은연중에 아들이 한 말을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부모 공경하는 마을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기도 동역자 나의 노모와 함께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부족한 자를 통해 간증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이수진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7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