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10 15:48:53 ]
6월에는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 많다. 지난 6월 6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념하는 현충일이었고, 6월 25일은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상처인 6·25전쟁이 발발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히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이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호국(護國) 보훈(報勳)의 뜻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나라 사랑을 실천한 연세가족을 찾아가 생생한 고백을 들어 보았다.
월남전 파병 ‘한강의 기적’ 도화선
| 박영석(남전도회 새가족섬김실 5부)
<사진설명> 1966년 백마부대 환송국민대회 후 시가 행진하는 모습
베트남 H시. 한번 부대를 나서면 백리행군이 이어진다. 굴속이나 땅 아래, 때로는 숲속 깊숙이 숨어 있는 베트콩을 수색하러 30~40㎞씩 행군하다 보면 강을 도하하면서 흠뻑 젖기도 하고 사람 키를 훌쩍 넘겨 2미터 가까이 자란 수풀을 헤치면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이동한다. 내 보직은 무전병이었고 전투가 발생하면 연락을 맡은 무전병이 주요 표적이다 보니 앞에 선 전우를 따라가면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옆의 전우가 쓰러지고, 나 또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생과 사의 현장의 기억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월남 파병
1970년대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나라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눈부신 발전의 뒤편에는 나라 발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베트남 파병용사나 파독 근로자(광부·간호사) 등 타국에서 몸 바친 이들이 있었음을 연세가족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1969년 21세에 백마부대 일원으로 베트남전에 임했다. 베트남에 한국군이 첫 파병된 시기가 1964년 9월이었고 이후 9년 가까이 우리나라 군인들이 참전했으니 당시 지지부진한 전쟁 상황에도 파병과 참전이 한창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타국의 전쟁에 자원한 까닭은 베트남에 투입되려던 주한미군이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여 안보적 위협을 줄이기 위함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또 공산주의 세력 확장에 위협받는 월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주고, 6·25전쟁 당시 수많은 우방국에 지원받은 것을 보답한다는 숭고한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손톱깎이 하나 생산해 내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가 바로 당시 대한민국이었고, 참전 수당이라는 개인·국가적 실리도 베트남 파병의 한 이유였을 것이다.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받은 병장 월급이 54달러였다. 한화로 1만8천 원(당시 1달러는 370원) 정도였고, 그 당시 쌀 한 가마니(80kg)가 4000원 정도였으니 쌀 다섯 가마니 정도의 금액이었다. 일반 사병 월급이 그 정도였고 장교와 부사관은 참전 당시 더 많은 금액을 받았을 것이다.
1973년 3월 23일 우리 군이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8년 8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32만 5000여 명(연인원)을 파병했으니 당시 참전을 요청한 미국으로부터 파병 인원만큼 얼마나 많은 원조를 받았을지 상상할 수 없다. 그 원조 덕분에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에 발맞춰 포항제철이 건설되고, 인적·물적 자원이 원활하게 이동할 경부고속도로까지 마련되면서 우리나라는 눈부신 산업화와 현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당시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에 진출해 놀라운 성장을 이뤘고,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다는 국가적 자신감과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높아진 위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 자본이 국내에 대거 유입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수적인 이득이 더 많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하며 격동의 시기를 살아온 일개 개인이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탠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고 부르던 새마을운동 노래처럼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베트남전 참전이 큰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오늘날 그 공로를 인정해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국가와 사회가 앞장서 대우하고 고엽제 피해자들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땀 흘려 지킨 소중한 대한민국
얼마 전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것을 결신한 후 새가족 교육도 수료하며 연세가족이 되었다. 담임목사님에게서 “죄 아래 살던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회개하여 죄 사함받는다”라는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영원히 멸망할 죄인이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믿어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은혜로 보전받았다는 것도 바로 알아 참으로 감사하다.
올해는 베트남전 파병 60주년이라고 한다. 베트남전의 결과를 누구나 다 알 듯이 공산주의 국가인 월맹(북베트남)이 승리했다. 이를 통해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휴전 중인 우리나라도 안보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6·25전쟁에서 수많은 이의 피를 흘려 나라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켰고, 베트남전을 비롯해 그 당시 산업 역군이던 대한민국 국민의 피땀으로 선진국 대열에 오른 소중한 나라가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이다. 예수가족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 주시도록 계속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울러 속히 북한의 문이 열려 통일을 이루고 지금도 굶어 죽어 가는 북한주민, 무엇보다 죄 아래 살다가 육신의 때를 마쳐도 영원히 고통받는 북녘 동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처럼 대한민국을 지키고 인도하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 박영석(남전도회 새가족섬김실 5부)
위 글은 교회신문 <8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