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6-02-04 12:54:45 ]
하나님의 진노 앞에 죄인인 인간은
질그릇처럼 깨져 멸망해야 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 죗값을 갚아 주셔
주님께 완전히 엎드려 심판 피하길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시2:9). 인간은 자신이 깨지지 않을 줄 안다.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죽음은 남의 일이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치킨을 시킨다.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다 자기는 예외라고 믿는다. 남들은 깨져도 나는 안 깨진다. 근거 없는 확신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엔 질그릇이다. 그래서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토기장이의 질그릇같이 부수리라”(시2:9)라고 하셨다.
흙으로 빚은 그릇이라 툭 치면 깨진다. 그게 인간이다. 왕의 손에 들린 쇠몽둥이가 두개골을 으깬다. 그 쇠몽둥이가 흙덩이를 내리친다. 금이 가는 정도가 아니다. 산산이 부서진다. 가루가 된다. 다시 붙일 수 없다.
사람들은 심판을 믿지 않는다. 설마. 죽으면 끝이지. 지옥이 어디에 있어. 그래서 마음껏 산다. 하나님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분의 말씀은 귀찮고, 그분의 법은 답답하다. 끊어 버리자. 벗어던지자.
하늘에서 칙령이 떨어졌다. “너는 내 아들이라”(시2:7). 하나님이 아들을 왕으로 세우셨다. 세상 주인이 바뀌었다. 반역자들에겐 사형 선고이다. 아들을 거부하면 발붙일 곳이 없다. 심판의 철장이 그분 손에 쥐어졌다. 도장이 찍혔다. 되돌릴 수 없다. 그분의 진노는 순식간에 타오른다(시2:12). 심판은 예고 없이 온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오늘 쓰러진다. 깨질 것들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 날, 무엇이 당신을 막아 주겠는가. 선행이든 도덕이든 종교든, 철장 앞에서는 다 종잇조각이다. 흙으로 빚은 그릇이 쇠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다 철장에 맞아 산산조각 나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지옥 불이 내 주소였다. 당신의 주소이기도 했다.
2000년 전 골고다. 철장의 궤적이 바뀌었다. 심판의 철장을 드신 왕이, 그 철장을 자신에게 휘두르셨다. 하나님의 진노가 철장이 되어 아들을 내리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질그릇이 깨지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버림이 아들의 영혼을 갈랐다. 공의의 무게가 뼈를 으스러뜨렸다. 왕의 몸이 박살났다. 그 틈에서 피가 쏟아졌다.
내가 맞아야 할 철장이었다. 내가 가루가 되어야 할 자리였다. 왕이 대신 깨지셨다. 사흘 뒤, 무덤이 비었다. 깨지신 분이 다시 일어나셨다. 심판을 통과하신 분이 부활하셨다. 철장이 더는 그분을 건드릴 수 없다. 그분 안에 숨은 자도 마찬가지이다.
심판은 취소되지 않았다. 철장은 여전히 들려 있다. 누군가는 맞아야 한다. 당신이 맞겠는가. 대신 맞으신 분 안에 숨겠는가. 그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2:12). 깨지신 그분 안에 숨어라. 철장 든 왕이 두 팔 벌리고 서 계신다. 심판자가 피난처가 되셨다. 쇠몽둥이를 든 손에 못 자국이 있다. 당신 대신 맞은 흔적이다.
그 발에 입맞추라. 비굴한 목숨 구걸이 아니다. 완전한 항복이다. 당신을 위해 뚫린 발이다. 그 상처에 입술을 대는 순간, 도망자가 왕의 자녀가 된다. 세상은 여전히 안 깨지는 줄 알고 산다. 강철인 척 버틴다. 철장은 이미 들려 있다. 길에서 망하기 전에, 지금 당장 그 발에 입맞추라.
위 글은 교회신문 <9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