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읽는 시편 (7)] 숨는 자와 엎드리는 자

등록날짜 [ 2026-02-11 10:39:12 ]

왕이신 구세주 앞에 엎드려 회개할 때

도망자에서 자녀로 구원의 은혜 경험

지금이 은혜받은 때요 구원의 날이니

주님의 사랑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우리는 피난처로 숨었다. 철장(鐵杖)을 피해 십자가 뒤로 몸을 숨겼다. 심판이 무서워서였다. 지옥이 두려워서였다. 숨통이 트였다. 살았다 싶었다.


숨기만 하면 끝이 아니다. 성벽 뒤에 웅크린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전투가 멈추면 나와야 한다. 평생 그 안에서 살 수는 없다. 숨어 있다고 다 시민이 아니다. 도망자와 백성은 다르다.


왕이 요구하는 것은 숨는 게 아니다. 나와서 무릎 꿇는 거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시2:12). 성이 함락됐다. 패전국 왕이 끌려 나온다. 왕관이 벗겨졌다. 무릎이 땅에 닿는다. 이마가 흙에 묻힌다. 승리한 왕의 발에 입술을 댄다. 먼지와 피가 뒤엉킨 그 발등에. 조건 없는 항복이다.


“내 왕관을 내려놓겠습니다. 내 계획을 포기하겠습니다. 당신만 왕입니다.” 


이 선언 없이는 백성이 될 수 없다. 항복이 어려운 이유는 하나이다. 우리 머리 위에도 왕관이 있어서다. 종이로 만든 왕관. 스스로 올린 왕관.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내 미래는 내가 설계한다. 내가 왕이다. 이 종이 왕관이 무릎 꿇는 것을 막는다. 불티만 튀어도 타 버릴 왕관인데, 벗기가 죽기보다 싫다.


시편 2편의 군왕들이 먼 나라 임금들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거울 속에 있었다. 여호와의 결박을 끊자고 외치던 자들, 그 멍에를 벗어 버리자던 자들. 나였다.


지적으로 동의했다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입술이 발에 닿아야 한다. 종이 왕관이 흙바닥에 떨어져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떨면서 어떻게 기뻐하나. 공포와 환희가 어떻게 공존하나.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하면 노예이다. 긴장 없이 히죽거리는 것은 방자함이다. 왕 앞에 서 본 적 없는 자들의 모습이다.


항복한 자는 떤다. 왕의 위엄 앞에서다. 질그릇 같은 나를 가루로 만들 수 있는 분이다. 내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안다. 그래서 떤다. 동시에 기뻐한다. 그 위대하신 왕이 나의 죄를 사해 주셨다. 종이 아니라 자녀라 불렀다. 철장을 든 손으로 나를 안아 주셨다. 그래서 기뻐한다.


십자가 앞에 서 본 사람은 안다. 피 묻은 발에 입술을 대는 순간,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 죽음 같은 두려움. 터질 듯한 감격.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떨림과 기쁨 사이. 십자가 앞에서 떨면서 기뻐하는 자가 믿는 자이다.


진노는 순식간에 타오른다. 마른 짚단에 불이 붙듯. 예고편이 없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제 웃던 사람이 오늘 쓰러진다. 길에서 망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나중에 믿지 뭐.” 그 나중이 더는 오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종이 왕관을 벗어라.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라. 그때 왕이 당신을 일으켜 세우신다. 먼지를 털어 주신다. 


“일어나라, 내 아들아. 내 딸아.” 


숨어 있던 도망자가 백성이 된다. 떨던 죄인이 자녀가 된다. 그분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시2:12). 아니, 그분께 엎드리는 자는 복이 있다. 숨기만 할 건가. 나와서 무릎 꿇을 건가. 왕이 기다리신다. 당신을 위해 뚫린, 그 피 묻은 발로.


위 글은 교회신문 <9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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