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18 10:03:56 ]
사사이자 선지자 역할 겸해
드보라는 드보라의 딸(아버지와 이름이 같음)로 랍비돗의 아내였고, 그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사사와 선지자의 사명을 겸한 이스라엘의 네 번째 사사였다. 여자였지만 통찰력과 판단력이 예민하고 정확했으며 하나님의 영감이 풍성하여 백성의 어려운 문제를 재판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풍속과 통념에 따르면 사회생활에서 여자들의 발언권이나 권위가 경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보라가 한 시대의 통치자였다는 것은 그의 인품과 능력을 가히 짐작할 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나타난 역사를 통해 족장시대나 사사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의 권익과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해 주심을 알 수 있다.
드보라의 재직 기간은 BC 1304년부터 1264년까지 약 40년간으로 알려졌다.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지 라아와 벧엘 사이에 있는 드보라(자기 이름을 따라 지음)의 종려나무 밑에 살면서(삿4:4~5) 이스라엘 자손을 재판했다. 군대 장관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침략했을 때 드보라는 바락을 격려하며 그와 함께 싸워서 가나안 군사를 물리쳤다. 이 승리에 대한 내용이 ‘드보라의 노래’라는 아름다운 시에 잘 나타나 있다(삿5장).
또한 대적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가나안군과의 싸움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서 사스라의 군대와 싸우게 했다. 그때 바락은 드보라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말했다.
드보라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하고 분연히 일어나 그와 함께 게데스로 갔다. 바락이 이끄는 1만 군사는 기손 강변에서 대적을 섬멸시켰다. 이 대승을 드보라는 노래로 읊었다. 이것을 ‘드보라의 노래’라 하여 히브리 최고 시의 하나가 되고 그의 사적은 이스라엘의 ‘잔 다르크’로서 추앙되어 기념되고 있다. BC 12세기의 이스라엘 문명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랍비 전승에 따르면 드보라는 원래 장막의 등잔불을 지키는 여자였다고 한다. 드보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던 때는 가나안 왕 야빈이 군대장관 시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심히 학대하던 때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이 드보라를 일으켜 용사 바락과 함께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뽑은 1만 명의 군대로 야빈과 시스라와 가나안 군대를 섬멸시켰던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