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9-20 23:57:36 ]
므비보셋은 다윗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 왕자의 독자였다. 만약 다윗 대신 요나단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면 므비보셋은 아버지 요나단을 이어 왕이 될 인물이었다. 그러나 왕실의 보호와 부모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기도 전에 그의 삶에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 닥쳐온다.
길보아 전투에서 아버지 요나단과 할아버지 사울, 그리고 두 삼촌이 처참하게 전사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므비보셋은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한창 부모 사랑을 받으며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유모의 손에 안겨 피신을 해야만 했다. 비보를 들은 유모가 므비보셋을 양육하려고 그를 안고 도망치다가 떨어뜨려 두 발을 다 절게 되었다.
그 후에 왕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두려움의 조건이 되어 요단 강 동쪽 로드발의 마길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국왕으로서 권위가 안정되자 사울의 후손을 찾았다. 사울의 후손을 해치려는 뜻이 아니라 요나단과의 약속을 생각하여 그 혈통을 도우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때 므비보셋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궁중으로 불러들였고 사울의 모든 재산을 찾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재산을 그 가문의 시종 시바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하였다.
압살롬의 반역 때 므비보셋은 다윗과 함께 가려고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려 했으나 종 시바가 그를 속이고 오히려 다윗왕에게 므비보셋을 모함한다. 다윗이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라고 묻자 시바는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삼하16:3)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때문에 다윗은 시바에게 속아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삼하16:4)하고 말해 버린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귀환했을 때 다윗은 므비보셋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인하여 오해를 푼다. 모반하기는커녕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피난한 날부터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할” 정도로 다윗의 왕국이 회복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삼하19:24). 므비보셋은 자신의 결백과 시바의 모함을 다윗 왕에게 고했다. 이 보고를 들은 다윗은 시바의 재산 절반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도록 했으나, 그는 사양하면서 자신은 다윗 왕의 복위를 바랐을 뿐이지 재산은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므비보셋은 ‘은혜 입은 자’의 전형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다윗으로부터 은혜 입을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으나 그의 선친 요나단의 공로로 말미암아 누구보다 왕의 은총을 많이 입었던 것이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은혜, 이것은 므비보셋이 받은 은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