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3-17 14:21:47 ]
미가는 미가야의 축약형으로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라는 뜻이다. 그의 고향은 모레셋이라는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미가서 1장 14절에는 그의 고향이 ‘가드모레셋’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레셋이 블레셋 사람의 성읍인 ‘가드’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스바냐 선지자(습1:1)나 요엘 선지자(욜1:1)의 경우와 달리 그의 아버지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는 비천한 가문 출신일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그가 구사한 언어와 수사법은 탁월했다.
한편, 여호야김 왕 때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모의했을 때, 몇몇 장로들이 예레미야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가의 사역을 언급했고,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렘26:17~19;24).
미가가 활동했던 BC 8세기 무렵은 남북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던 때였다.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사마리아 북왕국의 멸망을 예언했던(미1:6) 미가는 BC 732년 르신 치하의 아람이 멸망하는 것과 BC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미1:1). 또 디글랏 빌레셀 3세(BC 745~727), 살만 에셀 5세(BC 727~722), 사르곤 2세(BC 722~705), 산헤립(BC 705~681) 등과 같은 앗수르 통치자들 아래 앗수르가 흥기(興起)하는 것을 목격했다(미1:1). 이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 쇠퇴하기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고대 근동을 지배했다.
한 때 산헤립의 침공으로 히스기야 왕은 결정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이사야와 미가의 사역을 통해 회개함으로 예루살렘은 무사할 수 있었다(왕하 18장 이하). 그러나 히스기야가 죽은 뒤 유다의 통치자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미가의 예언대로 BC 586년에 유다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미가는 이들이 다시 귀환할 것을 예언했다(미7:15).
미가서는 구약 소선지서의 여섯 번째 책으로, 베들레헴에서 한 통치자가 나실 것을 예언한 것(미5:2~4)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미가서 서두는 사마리아의 멸망과 산헤립의 침략에 대해서(미1:2~16), 결론 부분은 바벨론 유수(幽囚)와 회복(미7:8~13)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