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5-01 13:21:14 ]
사울-다윗-솔로몬에 이은 통일왕국 결국 갈라져
하나님께서는 죄의 대가를 꼭 치르심을 명심해야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40년 동안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 위대한 제왕 솔로몬. 그는 재임 초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충만히 받았고, 최고의 정성으로 하나님의 전(殿)을 완공한 후에도 탁월한 국가경영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늙어서는 그 화려한 업적에 도취해 마음이 서서히 하나님을 떠났고, 그 가장 큰 증거로 이방 여인들을 수없이 왕비와 첩으로 데려왔다. 그들이 가져온 우상을 섬기는 신당을 나라 곳곳에 지었고, 무리한 건축 공사를 계속 진행해 과중한 부역과 세금으로 백성의 허리를 휘게 했다.
이에 하나님은 그에게 무서운 경고를 수차례 보냈지만, 솔로몬은 별다른 회개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솔로몬을 괴롭히는 적을 사방에서 일어나게 하셨고, 이스라엘 왕국이 솔로몬 다음 대에 갈라질 것을 예언하셨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가장 많은 잠재력을 지닌 솔로몬의 타락은 앞으로 다가올 이스라엘 전체의 암울한 미래를 말해주었다.
백성, 개혁을 요구하다
솔로몬에 이어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강력한 통치하에 잠재해 있던 여러 가지 문제와 지파 간의 갈등이 나타난다. 이것은 열왕기상 12장 1절에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이 왕권을 인정받으려고 세겜에 갔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왜 왕권을 인정받으려고 수도 예루살렘이 아닌 북쪽 세겜까지 가야 했을까? 여기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르호보암이 즉위할 당시, 솔로몬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미 여러 차례 대적이 침략해 이스라엘의 국력이 많이 약해졌고, 국경 지역 백성은 잦은 침입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특히, 불만 세력의 핵심은 다 북쪽 이스라엘에 모여 있었다.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왕상12:1)는 말씀에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북쪽 10지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아직 북쪽 10지파가 실질적으로 새 지도자 르호보암에게 반기를 들고 나라를 분열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다윗-솔로몬 대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이룬 엄청난 위업과 영광을 인정하는 그들인지라 쉽게 국가 질서를 깨는 일은 주저했다.
그러나 솔로몬 왕 통치 시절에 가한 무리한 부역과 세금 징수를 계속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새 왕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획기적인 새 정책을 제시해야만 백성이 새 왕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르호보암의 왕권을 인정하는 문제를 두고 북쪽 10지파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인 여호수아 가문인 에브라임 지파 중심지 세겜으로 르호보암을 불러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하려 한 것이다.
당시 확실한 르호보암의 지지 세력은 남쪽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2가문밖에 없었다. 그 2지파 후원만으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는 없었을 터. 자존심이 좀 상했겠지만, 르호보암은 반드시 세겜에 가서 북쪽 10지파의 충성을 받아내야만 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다
모든 지역에서 온 대표자들이 세겜에 모여 당시 시국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르호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인정하려 했다. 그러나 그를 받들기 전에 혹독한 세금에서 국민을 보호하고자 몇 가지 요구사항을 건넸다.
르호보암은 이를 해결하고자 일단 늙은 대신들에게 물으니 이들은 과중한 세금으로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그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자신의 안락을 더 중시했기에 그 안건을 수락하면 왕실의 예산이 축날 것으로 생각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대신에 그의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의 친구들은 하층계급의 요구사항을 무시하라고 조언했다.
이후 르호보암은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고 연설했다(왕상12:14 참조).
10지파는 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르호보암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은 둘로 갈라졌다. 그 후 다시는 합쳐지지 않았다. 왕권을 쥔 자의 그릇된 욕심 때문에 분열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