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14>] 여로보암의 아들로 태어난 불행

등록날짜 [ 2012-05-29 10:34:58 ]

북이스라엘 2대 왕, 재위 2년 만에 혁명으로 물러나
하나님의 예언대로 여로보암의 씨는 전부 죽임당해

북이스라엘 나라 제2대 왕이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은 2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나답의 역사에서 우리가 주의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세 가지 있다.

나답의 잘못을 통해 깨달아야 할 점
첫째, 나답의 정책이나 생활이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지은 죄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왕상15:26).

둘째로 중요한 문제는 이 사람이 자기 휘하 군대, 말하자면 이스라엘 주력군을 이끌고 남쪽 깁브돈에 갔을 때 벌어졌다. 깁브돈을 탈환하려고 그 지역을 포위할 때, 나답의 신복(臣僕)인 바아사가 모반하여 진중에서 나답 왕을 죽였다.

그리고 자기를 대적할 세력의 뿌리를 뽑으려고 여로보암 집안의 생명이 있는 자를 하나도 남김 없이 멸하는 무서운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 여호와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전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버릴찌라”(왕상14:10).

여로보암의 아내는 아들 아비야가 아플 때 여로보암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인 체하고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갔다. 그때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하고 엄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왕상14:7).

여로보암 집의 남자는 하나도 씨앗을 남기지 않고 계승할 수 없게 다 죽인다고 했는데, 반역자 바아사는 실제로 생명이 있는 남자고 여자고 간에 여로보암의 집에 속했다고 하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렸다. 이것이 둘째로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다.

셋째는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도덕적인 기풍(氣風)이 어느 정도였겠나 하는 점이다. 특별히 권력을 탈취하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이어받든지 하는 문제를 어떤 생각을 지니고 대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같은 시대라도 국가와 민족 사회에 따라서 그것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것이 어떠했는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사회의 도덕적 기풍의 저급성
나답이 왕이 된 때는 북이스라엘 역사의 시초였다. 한 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제2대 만에 왕조가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선 지 불과 24년밖에 안 된 때였다. 여로보암이 22년 동안 왕 노릇을 했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전 910년은 여로보암이 즉위한 제23년째 되는 해다. 22년째가 911년이니까, 나라가 선 지 23년 만에 이렇게 왕의 혈통이 바뀌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둘째 왕조가 서는데, 북이스라엘은 이런 혁명의 역사가 총 8번이나 있어서 아홉 성씨 왕조가 흥망성쇠를 겪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할 때까지 왕조는 여로보암 왕조부터 호세아 왕조까지 모두 아홉이나 된다. 결론적으로 모반을 통해 권력을 탈취하던 그 당시의 기록을 보면 북이스라엘의 민도, 일반 사회의 정치적 식견 그리고 사회적 기풍은 어떠했는지를 살필 수 있다.

사사 시대를 보아도 사람들이 모여서 사람의 의견으로 사사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만든 제도를 따라 사사를 세운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사사니까 아들이 사사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혈통 세습 법칙이나 제도도 없었다.
그러다가 왕국이 된 다음에 왕위를 세습하기 시작해서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으로 내려왔다. 북이스라엘에서도 자연히 여로보암이 죽은 후 그 아들 나답에게 왕위가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나 지적인 감정을 따라 국민의 승인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칼과 폭력만으로 지금까지 앉아 있는 왕을 쳐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임금이라고 그 자리에 앉으면 그대로 임금 노릇을 또 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하며, 다시금 왕의 혈통을 유지하려는 복벽운동이 일어났다든지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냥 200년을 내려오면서 그렇게 여러 번 왕위 찬탈을 반복하는 데도 같은 이야기만을 쓰고 또 썼을 뿐이다. 나답 이후에 바아사 왕조가 그렇게 섰고, 이다음에 가면 시므리라는 사람이 또 그랬고, 제10대로 내려가면 예후라는 사람이 또 선왕조(先王朝)를 철저하게 괴멸하고 박멸해 버린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된다.

그렇지만 그 사회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무고히 피를 흘리는지’에 대한 아무런 항의도 없었다. 그것이 마치 세력자들 사이에서 당연한 현상인 것같이 사회가 인식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북이스라엘은 나라의 정통성 없이, 또 백성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월을 낭비하고 있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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