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6-12 11:44:57 ]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북이스라엘 군대 이겨
그러나 죄를 단호히 끊지 못해 짧게 쓰임받다
<사진설명> 아비야 왕은 40만 명으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군대 80만 명을 물리쳤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18년 되는 해에 아비야가 남유다 왕이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년을 다스렸다. 그는 르호보암의 아들이며 아비얌이라고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아비야로 통일한다.
아비야 왕의 역사기록에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과 싸운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여로보암과 싸울 때 아비야가 행한 일을 가지고 아비야를 다 평가할 수는 없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베푸사 아비야는 전쟁에서 크게 이긴다. 즉, 열세(劣勢)였던 유다 군사들은 북쪽 이스라엘과 대전할 때 적 군사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수였지만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이끌어주신 것이다.
아비야는 유다의 택한 용사 40만 명을 이끌고, 여로보암과 전쟁하려고 나갔다. 그 앞에는 여로보암 왕의 북이스라엘 용사 80만 명이 대진하고 있었다. 아비야 왕이 스마라임 산 위에 올라가서 여로보암과 모든 이스라엘 군인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이스라엘 무리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원히 다윗과 그 후손에게 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는 틈을 타서 그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왕을 배반하였고, 방탕하고 교만한 자들이 그를 도와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다. 르호보암이 마음이 약하여 이들을 다스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연약한 시대가 다 지났다.
너희가 지금도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느냐? 너희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을 의지하느냐? 너희는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신으로 섬기고 있다. 또 너희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다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습과 같이 아무나 제사장을 삼고 있지 않으냐?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제사장이 되고자 하면, 허무한 금송아지의 제사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유다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또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우리에게 있다. 그들은 아론의 후손이고 아침과 저녁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율법을 따라 번제를 드리고, 분향하고,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드리고 있다. 우리는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여호와를 배반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의 하나님과 싸우지 마라. 너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제사장의 경고 나팔 소리를 듣고 있다.”
개전 후, 여로보암 왕이 유다를 치기 위하여 복병을 숨겨 두었다. 이들은 유다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유다 군대를 공격했다. 유다 군대는 포위를 당했다. 이것을 보고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은 나팔을 울려서 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뒤에서 많은 군대로 유다 군대를 공격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유다 군대가 이기게 하셨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군대 50만 명이 죽음을 당했다. 이스라엘 군대가 유다의 군대 앞에서 완전히 항복했다.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대승을 주셨다.
이후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많은 성읍을 빼앗았다. 벧엘과 여사나와 에브론과 그 주위의 모든 땅을 유다가 빼앗았다. 아비야에게 패한 여로보암은 다시는 강한 나라가 되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비야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북이스라엘을 이기는 승리의 기업을 주었지만, 아비야는 개혁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아비야도 죄를 저지르고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고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마음을 보였기 때문이다(왕상15: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행한 선행과 순종함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지키셨다. 그러다 보니 나라가 멸망하지는 않았으나, 아비야도 성경에 짧게 기록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 아들 아사는 하나님의 개혁에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통치를 이어간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