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왕 이야기 <40>]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그 통쾌함

등록날짜 [ 2012-12-18 09:57:57 ]

성전 정화, 우상숭배 철폐, 유월절 준수 등
철저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을 대할 때 흡족하게 생각하신 왕이 둘 있는데, 바로 다윗과 히스기야다.

열왕기하 18장 5절에, 히스기야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했는데,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하며 칭찬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왕이자 신앙인이다. 우리는 그런 히스기야의 믿음을 본받아 이 험한 세상에서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기에 하나님께 그토록 인정받았는지, 그런데도 히스기야에게 찾아온 시련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히스기야 왕을 평가하는 또 다른 성경구절은 역대하 29~32장과 이사야 36장이다. 역대하에는 히스기야가 행한 종교개혁을 자세히 기록했고, 이사야에는 남유다가 앗수르 장군 랍사게에게 굴욕적인 말을 들으며 치욕을 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크게 세 부분에 걸쳐 진행했다.

먼저 아버지 아하스가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는 일을 했다. 아하스는 이방신상, 특히 아람 다메섹에서 본 이방제단 모습을 하나님 성전에 그대로 도입해, 일종의 혼합주의로 만든 장본인으로 남유다 왕 중에서 아주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이방인의 도구와 방식을 접목하여 성전의 순수성을 훼손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성전 양식을 변경함으로써 말씀을 왜곡한 인물이 되었다.

히스기야는 바로 그 부분에 개혁을 실행했다. 히스기야는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끄집어내 불사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과감히 제거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전의 순수성과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살려는 자세를 지녔으며, 하나님 말씀에 거짓이나 혼합물을 첨가하지 않고 순수함을 유지하려 했다.

히스기야가 한 이런 개혁 성향을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다는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종의 혼합주의이며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삶을 산 부친 아하스에 비해, 히스기야는 철저하게 신앙 중심의 삶을 선택한다. 그것은 히스기야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그릇된 삶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철저하게 준비하고 훈련한 상태에서 왕이 되었기에 행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둘째, 유다 민족 전체에 걸쳐 산당과 우상을 박살 내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성경 기자가 유다 왕들을 평가할 때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였으나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달랐다. 히스기야는 단순히 예루살렘에 있는 중앙 성전만 성결케 한 것이 아니라, 지방과 서민의 삶 구석구석에 깊이 파묻힌 거짓되고 헛된 이방신앙과 민간신앙까지도 철저하게 개혁했다. 암암리에 행해지기에 민간신앙이나 무속신앙 같은 것들은 근절하기 무척 어렵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일을 수행하고자 결단을 내리고, 지역에 있는 산당과 우상을 완전히 괴멸했다.

셋째, 유월절을 이스라엘 전체가 지키게 한 점이다. 유월절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압제에서 기적적으로 구원해 낸 것을 상징하는 날이다. 죽음의 사자를 보내 애굽 모든 장자는 죽이되,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 장자는 그냥 지나쳐, 구원의 역사를 이룬 날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뿌리시고 대속하신 죽음을 상징한다. 즉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던,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구원역사를 이룬 그 당시 방식을 기억하며 그대로 살아가자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유월절은 한동안 준수되지 못하다가, 히스기야가 종교 개혁한 후로 다시 지키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히스기야가 행한 이런 개혁을 보며 상당한 통쾌감이 든다. 매우 파격적이라 할 만큼 완전하고 분명한 히스기야의 개혁정신에 일면 당황하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개혁을 실천해 가는 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며 희열을 느낀다. 왜 그런가? 그만큼 종교개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호에서도 역시 히스기야의 치적에 대해 알아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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