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1-06 15:27:18 ]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다는 확고한 신앙관은
높은 지위에 따르는 교만과 죄의 유혹에도 견고해
“요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륙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대하27:1).
아버지 웃시야가 나병에 걸려 남유다 왕국을 통치하지 못하게 되자, 아들 요담이 25세에 왕위에 올라 유다를 통치했다. 요담의 모친 여루사는 사독의 딸이었다.
이후 요담은 1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 요담은 그 아버지 웃시야가 한 모든 행위를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했다. 그러나 요담은 여호와의 전(殿)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나병에 걸린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제사도 드리러 가지 않았다. 또 백성은 점점 악해졌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더라”(대하27:2).
요담은 성전의 윗 문을 건축하고 성벽을 증축했으며, 산중에 많은 성읍을 건축하고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도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암몬 왕과 벌인 전쟁에서 계속 승리를 거둬 조공(朝貢)을 획득하기까지 했다. 암몬 자손이 매년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 가마와 보리 일만 가마를 공물로 가져왔다.
“암몬 자손의 왕으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일백 달란트와 밀 일만 석과 보리 일만 석을 드렸고 제 이년과 제 삼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드렸더라”(대하27:5).
이처럼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길을 걸었고 치세를 점점 강성하게 유지했다. 요담은 이전 세대의 허물과 문제를 바르게 직시하고 그것을 답습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점점 더 강성해졌다.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6).
요담이 죽자 아들 아하스가 대신 왕이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유다의 황금시대도 끝이 났다. 요아스 왕 시대부터 시작한 황금기는 아마샤-웃시야-요담으로 이어져 유다 왕국은 100년간 태평세월을 보냈다. 반면 이 기간에 북이스라엘은 항상 환난과 고난 속에서 살았다.
요담은 드물게 선한 군주였다. 요담은 하나님 앞에 죄를 많이 짓던 이전 왕들과는 달리, 사악한 길로 빠지지 않았을뿐더러 하나님의 능력을 후광 삼아 국가를 번영하게 했다. 오벨 성이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나 요담 대에 들어 튼튼하게 증축하였고, 성읍과 요새를 강건하게 하여 외적이 침입해도 격퇴하였다.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전쟁과 행위는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대하27:7).
치적이 이쯤 되는 군주(君主)라면 이에 비례하여 명성도 대단히 컸을 법하다. 하지만 요담은 높아지는 명성에 덩달아 교만에 빠지거나 흥분에 들뜨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고도 명확하게 국사를 처리해 나갔다.
그렇다면 요담이 이토록 하나님과 백성 앞에 선한 군주로서 자리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요담의 인생 대소사 전반에 걸쳐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 투철한 신앙관이 기저(基底)에 깔렸기 때문이다. 실로 요담은 신앙과 실천력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인생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요담이 살아온 이 같은 생애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봐야 한다. 우리가 입술로는 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따르겠노라고 고백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게으름과 속임수와 거짓의 암흑 속에 잠겨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이제 겨우 잠에서 깨어나 혼미 속에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도 역시 지난날에 행한 허물과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더 바른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더욱 강건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저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하27:9).
요담이 죽고 아하스가 왕이 된 후부터 남유다는 다시 약소국으로 몰락했다. 그 원인은 바로 우상숭배에 있었다. 하나님을 떠난 민족은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