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3-03 11:00:13 ]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와 지중해를 동시에 지배할 목적으로 만든 항구 도시로, 초대교회 시대에는 75만여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였고, 유대인이 인구 3분의 1을 차지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당대 7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던 최고(最古) 도서관이 있었다. 모든 사상과 문화가 주위에서 흘러 들어와 꽃을 피운 저수지요, 유럽 문화의 진원지라 할 만한 문명도시였다.
주전 1세기경에는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이 탄생한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태어난 아볼로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섭렵한 사상가요, 학자였다(행18:24).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를 가리키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복음을 전했다. 침례 요한이 외친 것처럼,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쳤다.
어느 날, 아볼로가 에베소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의 설교를 들어 보니,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소식을 아볼로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행18:25).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아볼로를 초대했다. 이들 부부는 아볼로에게 예수의 고난과 부활, 성령 강림으로 시작한 초대교회 사역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아볼로는 감동했다. 이제야 온전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다.
아볼로는 아가야로 건너가 고린도교회를 세우는 일에 바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행18:27~28).
바울은 아볼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아볼로는 탄탄한 성경 지식을 배경 삼아, 성령 충만한 설교로 교인을 가르친 선생이었다. 고린도교인 중에는 아볼로를 따르는 분파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볼로는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고린도교회를 조용히 떠났다.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