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신약성경에 여섯 번 등장한다. 세 번은 사도행전에서, 나머지는 바울 서신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부부가 바울과 관련한 성경에 많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바울 사역과 초대교회 선교 역사에 그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까닭이다.
남편 아굴라는 본도(터키 북부 흑해연안 지역)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브리스길라는 로마 출신으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귀족이 천막 만드는 가죽 수선공 유대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데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들 부부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 큰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로마에는 유대인이 5만 명 정도 살고 있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는 쪽과 이를 방해하고 핍박하는 무리로 나뉘어 심한 갈등을 빚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갈수록 심해지자, 로마 정부는 폭동 사태를 우려했다.
드디어 주후 49년 로마 글라우디오 황제가 ‘나사렛칙령’을 내렸다. 이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모두 추방한다는 내용이었다(행18:2).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추방되어 ‘고린도’로 갔다.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무역 중심지였다. 상업이 발달했고, 물질적 풍요함을 누리던 곳이었다. 항구도시답게 우상숭배가 만연했고 영적 무지로 도덕이 무너진 상태였다. 한편, 이곳은 각종 고대올림픽 경기와 군사 이동이 잦아 천막의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때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 깁는 일로 재산을 많이 모았다.
이 부부는 자신들의 일터 일부를 사도 바울에게 제공함으로써 그가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게 도왔다. 그들의 작업장이 고린도 지역 선교 본부인 셈이었다. 또 바울과 같이 거주(행18:3)하며 자신들의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했다(고전16:19). 바울에게 물질과 기도로 후원함으로써 바울이 유럽 선교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게 도왔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 부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전16:3~4).
이처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게는 바울과 이방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도 복음의 빚 진 자가 되었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