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네 시몬은 골고다로 이어지는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라는 사나이가 십자가를 지고 비틀비틀거리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형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탈진 상태였다.
로마 병정들은 십자가를 진 예수가 걸어가다 쓰러지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시몬이 서 있는 장소에서 예수가 또다시 쓰러졌다. 아무리 채찍을 내리쳐도 일어나지 않자, 로마 병정이 군중 속에 있던 시몬의 팔목을 험악하게 잡아챘다.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뜻이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가장 혐오스러운 형틀이었다. 로마 제국이 식민지 백성을 복종하게 하려고 고안해 낸 최악의 고문 도구였다. 십자가 형벌을 받는 사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극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 간다. 당대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끔찍한 공포요, 잔인한 도구였다.
시몬은 기겁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로마 병정의 완력은 시몬을 압도했다. 시몬은 속수무책으로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랐다.
시몬은 구레네에서 온 유대인이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쪽 연안 그리스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당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예수의 소문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며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닐까 기대했다.
시몬도 예수가 메시아일 것을 기대했지만, 예수가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시몬은 원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됐다. 그 후 예수께서 인류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면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은 초대교회의 영광스러운 일꾼으로 쓰임받았다.
바울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소개한 ‘루포’가 바로 시몬의 아들이다.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 형벌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를 비롯한 가족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았다.
/정리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2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