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5-16 13:07:29 ]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블레셋 땅 가드로 도피했다. ‘가드’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블레셋에는 중앙 집권적인 왕이 없고, 각 도시를 다스리는 왕들이 연합한 국가 형태였다.
다윗이 블레셋 땅 가드로 도망간 이유는 사울 왕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는 안심하고 거처할 장소가 없어서였다. ‘가드’는 엘라 골짜기 입구에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였는데, 가드 왕이 다윗을 받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가드를 다스리는 왕은 ‘아기스’였다. 아기스 왕은 다윗의 망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신하들과 의논했다. 신하들은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다. 그러면서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벌인 싸움에서 이겼던 일,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사울 왕보다 다윗의 명성이 높다는 사실을 아기스 왕에게 보고했다.
다윗은 아기스의 신하들이 하는 말을 엿듣고 자신이 의도했던 방향과 반대로 흐르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다윗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에 글씨를 쓰면서 입가에 침을 줄줄 흘렸다(삼상21:13). 자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기스 왕에게 보여 주려고 재빨리 연극을 한 것이다.
아기스 왕은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삼상 21:14)라며 다윗을 쫓아내라고 명령했다. 후에 다윗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라고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죽을 고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다윗은 아둘람 굴로 피신했다. 가드에서 남동쪽으로 약 14km 떨어진 장소인 ‘아둘람’은 ‘피난처’‘보호처’라는 뜻을 가졌다. 원래 유다 영토였으나 당시에는 블레셋이 지배하고 있었다.
다윗의 피신 소식을 들은 다윗의 부친과 형제, 집안사람들도 아둘람 굴로 모였다. 또 환난을 만난 사람들,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 몰려왔다(삼상22:1~2).
하나님 뜻을 거슬러 타락에 빠진 사울 왕은 이스라엘을 바른길로 이끌지 못했다. 정치와 경제를 제대로 이끌지 못해 나라가 황폐해졌고, 백성의 고통은 심해졌다. 장차 이스라엘을 새롭게 할 다윗과 함께 고난도 기쁘게 받겠다고 모여든 사람이 400명 정도 되었고, 이들 중에는 용사와 선지자, 애국지사도 많았다(대상12:1~18).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