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1-22 00:45:33 ]
안정된 삶의 기반과 과거 버리고
말씀대로 순종해 큰 축복 받아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
아브라함보다 더 큰 복 받았으니
믿음과 기도 통한 순종이 의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아브라함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이 활동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지시하신 것처럼 오늘날 성도에게도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본문 삼아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
“가라.”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아브라함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누구도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신앙생활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지 않는다. 자신이 결단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이다. 안정된 생활 기반과 자신의 모든 과거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가혹하게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요구하실 수 있다(눅 14:33).
치안 유지가 잘 안 됐던 고대 사회에서 ‘친족’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켜 주는 안전망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친족뿐 아니라 더 가까운 혈족 ‘아비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11:8).
아브라함은 가야 할 곳을 구체적으로 명시 받지 않았으나,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아브라함은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이 말씀이 선포될 당시 아브라함은 일정한 정착지 없이 유리하는 미약한 상태였다. 자식도 없었고, 나이는 75세였다. 자식을 낳을 가망이 없는 나이였다. 이성과 순리로 판단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롬4:3)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목격하고 있고, 그 복을 누리고 있다.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것이 참 믿음이다(롬4:18).
‘복의 근원’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영적인 축복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더욱 큰 복을 받았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 되는 권세까지 주셨다.
따라서 성도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훨씬 크고 강해야 하지 않을까. 아브라함의 결단과 순종보다 더욱 위대한 순종이 요구되는 시대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얻을 수 있고, 순종은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하여 이룰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0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