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1-04 13:25:59 ]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창44:14).
베냐민의 자루에서 애굽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으므로 형제 모두 요셉의 집으로 다시 돌아와 요셉에게 심문을 받았다. 베냐민은 중죄인이었기에 죽임을 당할 수 있었고, 다른 형제들도 이방 사람들의 종이 되어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창44:16).
유다는 자신들에게서 발견된 은잔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 모두가 요셉의 종이 되겠노라고 자청했다. 이처럼 자기 잘못을 책임지려고 하는 태도는 성도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이다.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잘못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그 범과(犯過)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결코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그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된다(요일1:9).
유다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 자신들이 도단에서 동생 요셉을 판 죄악을 하나님께서 적발하셨다는 고백이요, 그 죄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지금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유다가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은밀하게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전지하신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우리가 지은 죄는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난다. 지금 당장 육신의 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직고하게 된다(롬14:12).
유다는 자기 생명을 걸고 베냐민을 구하려고 애굽 총리에게 간절히 탄원한다. 유다의 자세는 ‘겸손’ 그 자체였다. 유다는 애굽 총리를 향해 ‘내 주(主)’라고 불렀다. 자신에 대해서는 ‘주의 종’이라고 했다. 이러한 애굽 총리와 유다 자신에 대한 대조되는 두 표현은 오직 애굽 총리의 자비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유다가 베냐민을 위한 중보자로 나선 것은 그의 놀라운 신앙 용기를 보여 주는데, 지난날 허물 많던 그가 얼마나 놀랍게 변화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장면이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로서(고후5:17) 유다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지닌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3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