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2-22 09:07:23 ]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나와서 죽은지라”(출8:12~13).
사람들이 죽은 개구리를 모아다가 무더기를 쌓으니 ‘악취’가 났다. 개구리는 애굽인들이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하던 우상들 가운데 하나였다. 애굽인들이 신으로 숭배하던 개구리가 악취를 풍기고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는 꼴은, 모든 우상들이 헛되고 가증한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는 ‘우상’과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상숭배는 단지 눈에 보이는 형상을 섬기는 것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땅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 갖고 싶은 욕망은 ‘탐심’이다. 탐심도 우상숭배라고 사도 바울은 단언했다(골3:5).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우상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허무한 악취가 나는 것들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우상이 있다면 그 우상과 함께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된다.
개구리 재앙으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던 바로가 모세의 기도로 개구리 재앙이 그치고 이제 숨을 쉴 만하자 다시 마음이 완강해져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처럼 굴다가 막상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을 넘어가게 되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바로는 더 큰 재앙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바로의 모습을 보며 그를 어리석고 배은망덕한 자라고 비난하지만, 이런 바로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간구한다. 그러면서 이 위기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드리고 더 충성하겠다고 서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이고 자신이 서원한 것까지 다 잊어버리고 만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기쁜 마음으로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우리의 결심들이 서서히 흐려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피조(被造)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과학과 물질과 쾌락의 노예가 스스로 되어 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자. 한갓 미물인 개구리에게 짓밟힌 애굽 백성과 오늘날 인간이 무엇 하나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까워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귀찮아질 때는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위기 속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자. 십자가 피의 공로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자.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78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