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10-07 18:11:06 ]
미혹의 본질은 거짓이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요일3:8)이며, 모든 미혹의 원천도 마귀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미혹에 쓰이는 거짓말 중에는 교묘하고 그럴듯한 것도 있지만 그 허황됨이 지나쳐 블랙 코미디 수준인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이단이 기독교인에게 가장 흔하게 써먹는 거짓말이자 스스로도 속아 반석같이 믿는 것이 있다. 먼저 성경 말씀을 보자.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5:3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4).
미혹하는 자, 즉 이단들은 위의 말씀들을 보여 준 후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성경 어디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했나, 나무에 달렸다고 했지.” 그러면서 기성 기독교가 다 틀렸다고 몰아간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십자가(, 스토우로스)라는 단어를 78번 썼다.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역사서에 무수히 등장하는, 형법상 가장 잔혹한 사형 방식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인 ‘십자가’는 예수님도 직접 쓰신 말이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마26:2). 예수님께 십자가 형벌을 선고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직접 이 단어를 써서 말했다.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예수가 이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유대인도 이 단어를 썼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눅23:21).” 그 외에도 서신서와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십자가’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기독교인이 이단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이단 자신들도 성경을 그렇게 옆에 끼고 다니면서도 그렇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십자가’ 단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렸다 할 때 쓴 ‘나무’, 곧 (크쉴론)은 그냥 ‘목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매달기 위하여 빔(beam) 형태로 나무를 교차한 목재 구조물’이다. 단순히 나무(tree)라면 가령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10)처럼 (덴드론, tree)이라고 썼을 것이다. 따라서 ‘크쉴론’은 십자가인 ‘스토우로스’의 또 다른 표현이며, 십자가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위해 대신 죽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예언으로 표현된 시대의 언어다. 설령 성경을 모르고 헬레니즘 역사에 무지해서 속임수에 현혹되었을지라도 자신들도 인정한다는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무려 78번이나 나오는 ‘십자가’ 단어가 왜 안 보일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갈라디아서 저자의 안타까운 심정에 강한 동의를 표한다.
지금도 이단들은 예수를 이사야나 엘리야 정도 되는 선지자로 여기면서도 자신들도 성경을 믿는다고 강변하니 미혹의 희생자다. 마귀의 황당한 거짓에 속은 것이다. 깨어 있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에 그렇게 황당하게 속아 넘어간다.
위 글은 교회신문 <54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