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19] 영적 존재에 관하여
등록날짜 [ 2018-02-28 09:19:30 ]
성경에 등장하는 영적 존재는 셋이다. 첫째는 영이신 하나님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수종 들기 위해 지음 받은 천사, 셋째는 하나님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지으신 인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 즉 성령,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살리는 영’이시다(고전15:45).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는 말씀에서 ‘영’은 헬라어로 πνεῦμα(프뉴마, 생기, 영 혹은 성령), 영어로는 ‘The Spirit’다. ‘The + 대표단수’ 어법은 대표적인 대상을 언급할 때 쓴다. 따라서 이때 ‘영’은 유일하신 영의 근원이요, 영 그 자체의 존재, 곧 말씀이신 하나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죽을 우리 몸도 살리시는 영(롬8:11)이시다.
그럼 사단, 곧 마귀와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저들은 본시 하나님을 수종 들기 위해 지음 받았으나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 하다 떨어져 큰 날의 심판까지 흑암에 가둬진 무리다. 본시 찬양하는 천사로 창조될 때부터 온갖 보석으로 단장됐고, 소고와 비파가 예비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룹 종류의 천사였으며 하나님의 성산에서 왕래하는 존재였다(겔28:13~14). 그러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으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의 보좌를 높이고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다가 땅으로 던져졌다(사14:12~14).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 이처럼 사단, 마귀는 항상 ‘단수’로만 쓰인다(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는 ‘마귀 등(等)’으로 보면 된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때, ‘마귀’는 사람을 미혹할 때 쓴다고 하나, 용례는 계시록 말씀처럼 무차별하다.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성경에는 ‘마귀’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마귀, 곧 디아볼로스(διαβολος)는 히브리어 ‘사단’의 헬라어 번역이기 때문이다. 개역한글성경에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신32:17)라고 딱 한 군데 나온다. 원문은 마귀가 아니라 귀신(슈딤, demon)이다. 히브리어에는 마귀(디아볼로스)라는 말이 없다. 마치 한글 성경에 ‘지저스(Jesus)’가 없는 것과 같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단이란 말의 뜻, 곧 둘로 쪼개는 자, 대적하는 혁명가, 이간자라는 의미대로 ‘둘’을 뜻하는 어원 ‘디(Di)’를 사용하여 ‘마귀’를 디아볼로스(Diablos)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스카프’와 ‘목도리’를 혼용하듯, 신약에서 ‘사단’과 ‘마귀’를 자연스럽게 혼용하므로 계시록에서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한다”고 서술한 것이다. 마귀는 육체에 깃들기보다 주로 생각을 빼앗아 역사한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마귀, 사단이 단수인 데 비해 귀신(δαιμόνιον, 다이모니온, demon or devil)은 거라사 지방 군대 귀신의 예처럼(눅8:30) 복수로도 많이 쓴다. 귀신은 사단이 타락할 때 저와 함께 내어 쫓긴 ‘그의 사자들’(ἄγγελος, 앙겔로스, angels)이며(계12:9)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1:6)이라고 지칭된 타락한 더러운 영들이다. 귀신은 조상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권에서는 조상인 척하지만 웅장한 대자연을 가진 서양에서는 ‘정령(精靈)’인 척하고, 실제로 제사를 받는 존재들이다(신32:17;고전10:20). 귀신(demon)은 사람의 육체 가운데 들어와야 쉼을 얻는 속성이 있다(마12:43;눅11:24). 주님은 귀신을 일관되게 “더럽다” 하셨고(눅4:33;막9:25), 실제로도 그 더러움이 영적 악취나 가증함 등으로도 분별되며 심하게 결박되면 실제로 구역질, 트림 등이 틱장애처럼 끝없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회개하고 부활 하신 예수님이 주인 되어 성령이 충만하면 머무르지 못하고 도망간다.
위 글은 교회신문 <56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