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25] 하나님 아버지의 뜻(델레마)
등록날짜 [ 2018-05-23 11:21:11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 이기고 부활하셔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9). 고로 많은 사람이 말로는 ‘주여’라고 하지만 내가 ‘살든 죽든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면 그의 부활은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지 나와 상관이 없다.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시인하며’는 ‘호몰로게오(ὁμολογέω)’라는 헬라어인데, 언행심사의 동일함(호모)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씀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통한다. 골로새서 2장 6절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主)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行)하되”라고 기록돼 있다. 말로만 ‘주여’가 아니라 ‘주로 모심=행함’의 원칙은 이처럼 신약성경 전체에서 일관된다.
그러면 무엇을 행함인가? 주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라 하셨다. “아버지의 뜻”. 우리는 많은 순간 ‘주님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를 언급하면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를 때처럼 육신의 정욕에 따라 선택하는 데 갖다 붙이고, 내 주장을 합리화하는 데 팔아먹는다. 하지만 실제로 신약성경에 정확히 ‘아버지의 뜻(θέλημα τοῦ πατρός; 델레마 토우 파트로스, wish of Father)’이란 표현이 여덟 번 나오고, 아버지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바 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표현 등이 수차례 나오는데 예외 없이 일관되게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
아버지의 뜻은 당신을 살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내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해 첫사랑에 빠지면 공통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 비록 오랜 육신의 죄악된 습성이나 미처 못 깨달은 죄성이 단번에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비록 성경 지식은 부족해도 예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 교회 다닌 햇수는 느는데 첫사랑이 식으면, 영혼 살리는 일보다 내 지식, 교회 내의 영향력이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첫사랑을 떠난 교회는 영혼 구원과 이벤트성 행사가 주객전도된다. 영혼들이 상처받고 떠나도 가슴 찢는 회개와 고침은커녕 분쟁, 당 짓기, 술수와 수근수근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50).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였다(눅22:42).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요일4:12).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한다면 차라리 맷돌을 목에 메고 바닷속에 들어감이 낫다(마18:6;막9:42;눅17:2). 상처 주느니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는 말씀은 공관복음 세 곳에 모두 다 실려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7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