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7-19 10:44:27 ]
세상 권력은 ‘권력 없는 자에게서 빼앗는 힘’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거부하고 세상 방식대로 왕을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사무엘상 8장 11~18절에 ▲그 왕이 너희 아들과 딸들과 종들과 토지와 소산을 가져갈 것이요, ▲그 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여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나 하나님은 그런 너희를 돕지 않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력한 권력을 동경하면서 어느새 그 권력에 착취당할지라도 기꺼이 붙들리는 것이 인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의 통치 역사에서 피비린내 나는 희생자들이 됐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 황제, 왕과 귀족의 휘황찬란한 궁전이나 유적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역과 착취의 결과물들이다. 세상 권세자 마귀는 돈, 제도, 폭력, 억압 등의 장치로 사람들을 조종하면서도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게 속인다. 사람들이 마치 ‘자유의지’로 권력을 동경하는 것처럼 현재의 지배받는 위치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전하(Your Majesty)’나 ‘주(My Lord)’라고 불리며 지배했던 왕들은 구원자가 아니었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고, 부역과 세금과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면 명령대로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직장에서도, 거래 관계에서도, 지역사회의 유지에게서도 이 같은 권력의 메커니즘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몸에 밴 두려움, 뿌리내린 박탈감은 참된 주인이요 왕이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그분과 멀어지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시인하고(롬10:9), 주로 받으면(골2:6), 주께서 나의 꿈과 시간과 배우자와 추구하는 것의 걸림돌이 되고, 가져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주 앞에 나아오지 못하게 한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요10:10) 마귀 속성대로 어느새 꿈을 잊어버리고 결국은 아무런 낙(樂)이 없다고 탄식하는 날(전12:1)을 만나는 수많은 인생을 보면서도 말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6:38). 세상 상인은 한 톨이라도 아끼려고 곡식 푸는 됫박에 최대한 살살 담고, 행여 됫박이 흔들려 곡물들이 차곡차곡 겹쳐질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후하시다(καλός 칼로스). 어찌하든지 하나라도 더 주려는 선함으로 가득하시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냐면, 행여 알곡 사이에 공간이 남을까 누르고(pressed, πιέζω; 피에조; 압착하다), 또 더 들어가라고 됫박 안을 뒤흔든다(σαλεύω; 살류오, 휘젓고 흔들어 가득 채우는 행위). 이것도 모자라 넘치게(ὑπερεκχύνω; 휘페렉퀴노, running over) 주시는 것이 우리 왕의 성품이다.
하나님께서 재물이 없고 힘이 없어서 우리에게 ‘주라’ 하시는 것이 아니다. 너의 재물과 시간과 모든 것의 주인을 바꾸면 놀라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 열린다는 뜻이다. 허접하거나 짝퉁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자꾸만 하나님께 나아간 후 비참한 인생을 상상하게 만든다. 정작 나는 여전히 마귀의 지배 아래 모든 역사의 불행한 사람들처럼 비참한 경로를 밟고 있으면서도.
위 글은 교회신문 <5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