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9-27 13:32:00 ]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마11:11)는 전무후무할 칭찬을 예수님께 들은 요한의 중요한 특성은 ‘절제’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3:4). 핵심은 먹고 입은 재료가 아니라 단순함을 통해 이루는 절제다. 넘치지 않게 소유하고 누리는 것은 성령의 열매(갈5:23)인 절제(ἐγκράτεια;엥크라테이아)를 이루는 전제조건이다. 영어로는 ‘self-control’로 번역된다. 스스로 ‘감정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덕목’이며 ‘불필요하게 넘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반대말은 탐람(貪婪)(고전5:11;6:10). ‘탐할 탐(貪)’과 ‘탐할 람(婪)’을 써서 ‘정도가 지나친 욕심’이라고 정의하는데 헬라어로 πλεονέκτης(플레오넥테스), 즉 과잉을 부르도록 지나치게 욕심부리는 상태(covetous)란 뜻이니까 정확한 번역이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의 ‘탐심’도 탐람의 명사형인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다.
신약성경에는 ‘절제’란 단어가 12번 등장한다. 모두 주의 종이 돼서 상(賞)받기를 소망하는 자의 ‘필수 자격’을 알려 줄 때 쓰인다. 침례 요한의 의식주처럼 ‘단순함’은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 습관이다. 재주가 많은 사람, 사회성 넘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인생이 꼬이는 경우가 많은데, 주원인은 산만해서다. 옷과 액세서리가 너무 많아 집을 나설 때마다 고민하느라 에너지를 쓴다. 동창회, 향우회, 전우회, 동호회 등 모임이 홍수다. 가야 할 맛집, 먹어야 할 음식도 참 많다. 위장이 늘어나도록 먹어 몸이 망가지고 찐 살을 다시 빼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쓴다. 항상 바쁘지만 실익(實益)은 없는 생활인데도 단절될 때의 막연한 공허함이나 두려움이 주인 노릇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싸다고 이것저것 사는 것이다. 그 결과 비싼 공간을 쓰지도 않는 싼 물건들을 쌓아 두는 쓰레기장으로 바꾼다. 인터넷 쇼핑으로 산, 몇 번 입지도 못할 싸구려가 쌓이고, 취미·관심사도 다양해서 한번 꽂히면 끝장날 때까지 돈을 낭비한다. 성경은 이를 ‘탐람하는 자’라 하는데 요즘 말로는 소위 ‘오타쿠’다. 분명한 것은 그럴수록 인생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9:25).
침례 요한은 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정작 그분이 오시자 조용히 사라졌다. 자신의 제자들이 옮겨 가는 것도, 자기는 망하고 주님이 흥한 것도 마땅하게 여겼다. 대제사장 가야바처럼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다 예수님을 가장 많이 모독한 사람이 되지 않은 것은 그의 삶에 절제가 따랐기 때문이다.
신앙개혁을 이끈 루터는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그 탓에 자신을 돕는 교역자가 과로로 곧 죽을 중환자가 됐을 때 “나는 자네가 필요하네. 그러니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가 죽지 않을 것을 명령하는 바이네”라고 편지를 보내 고쳐 줄 만큼 바빴다. 그러나 철칙이 있었다. “늘 최소 두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하고, 바쁘면 최소 세 시간을 기도한다.” 기도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면 바쁜 이유가 교회 일, 영혼 구원의 일이라도 평안과 형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원의 기쁨을 유지할 수 없고 어느새 교회를 욕하는 자로 바뀐다. 그러므로 먼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기도하기 전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지혜를 구하고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요한처럼 내 역할이 끝난 일, 주님과 교제하는 데 방해되는 일들은 거룩해 보여도 미련을 버려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것들이 아니면 다 주든지 버리라.
위 글은 교회신문 <59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