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8-05 20:35:37 ]
예배에 빠지지 않아도 정작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음 질문에 정직하게 몇 가지나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지 계수해 보자.
(1) 나는 진실로 자랑하는 죄를 범치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지 않았는가?
(2) 내 입술이 정결하여 운전할 때라도 욕설이나 저속한 말을 일절 하지 않고, 비판·저주·고자질보다 허물을 덮어 주며 습관적으로라도 욕을 입에 붙이지는 않은가?
(3)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고, 헛된 영광을 위해 사치하지도 않고, 교회 밖에서도 교회 안에서와 같이 행동하는가?
(4) 30분이라도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감하며 진지하게 기도할 수 있는가? 혼자 골방에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가?
(5) 날마다 말씀을 받고,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려 최선을 다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생각·뜻·중심·동기·영·행위 등을 “감찰하신다”는 말이 45번 이상 나온다. 감찰은 헬라어로는 ἐρευνάω(에레우나오)인데 한마디로 정의하면 ‘찾고 추적하여(search), 검증하다(examine)’라는 뜻이다. 히브리서 4장 앞부분은 복음을 받고도 순종치 않은 자들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날 때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조목조목 경고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민낯을 들여다보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망은 오직 예수뿐이다. 우리 연약함을 체휼(성경용어 4편 참조)하시는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히4:14~16)뿐이다.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보혈의 공로 앞에 끝없이 회개하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변화될 믿음을 주신다. 모태로부터 형제들과 경쟁하며 술수가 몸에 밴 교활한 자도 바뀐다. 마귀는 회개의 말씀 앞에 ‘또 회개인가?’라고 식상하게 한다. ‘안 되는 걸 어쩌라고?’라며 짜증내게 하고 죄를 당연시하는 세상을 사모하게 한다. 그러나 끝없는 회개는 성령의 참된 종들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 한다”가 모토였던 찰스 스펄전, 오직 복음만 자랑한 마틴 로이드 존스, 성경 인물 예레미야나 이사야와 수많은 선지자,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선포가 이것이다. 미사여구와 달콤한 지식의 향연을 바라거든 왕궁으로 가되(눅7:25),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사모하거든 회개의 강단으로 모여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