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1-13 16:25:00 ]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사람은 상황과 사정이 바뀌면 변한다는 점을 빗댄 말이다. 이처럼 사람이 변하는 데는 두 가지 속성이 있어서다. 첫째,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린’, 수정해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 둘째, 자기 생각의 유익과 편리에 따라 계속해서 배신한다는 점. 변치 않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각양 좋은 은사로, ‘온전한(Perfect)’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은 ‘변치 않으신다’는 점이다. ‘양(陽)이 있으면 음(陰)이 있다’는 식의 어두움조차 전혀 없기에 수정할 것이 전무(全無)한 분이시다.
‘τροπῆς ἀποσκίασμα(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reverting shadow; 뒤집는 그림자)’는 ‘회전하는 그림자(shifting shadow)’로 번역된다. 이때 ‘그림자’는 우리말 ‘어두운 그림자의 단면’이라는 표현에서처럼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부작용이나 실수’를 관용적으로 뜻한다. 믿음이란, ‘완전하신 하나님’은 내게도 완전하신 분임을 알고 내 몫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감사밖에 드릴 것이 없는 분, 당장은 힘들어 보여도 모든 것이 합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 절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 무슨 역사든 파생하는 부작용을 전혀 낳지 않으시는 분, 무슨 일에든 변치 않고 변할 이유도 없으신 분,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가 있지만, 그림자조차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그분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죄로 변질한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약속대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자신에게 실제가 된 사람마다 그 은혜 앞에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시인하는 서원(誓願)을 드린다. 삼손은 왜 힘을 잃었을까? 정말 삼손의 힘은 삭도(削刀)를 한 번도 대지 않은 긴 머리카락에서 나왔을까? 아니다. 삼손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린 ‘나실인 서원’(민6:5)을 깨뜨려 하나님의 신이 떠났기 때문이다.
같은 서원을 드려 머리를 길렀던 것으로 보이는 바울은 에베소로 향하기 전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성경에 기록됐지만, 그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다(행18:18). 머리카락이라는 외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거대한 은혜 앞에서 ‘내적 서원의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새해란 없다. 삶은 ‘회전 운동’이 아니라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직선 운동’일 뿐이지만, 돌아보는 계기는 된다. ‘나는 변치 않는 완전한 주님 앞에 얼마나 변질되었나?’ 세상과 구별되던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 볼썽사나운 꼴처럼 내 속의 깨뜨려진 서원들을 돌아볼 시간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6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