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0-03-22 11:11:33 ]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는 모습과 메달을 따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국적을 불문하고 연주가, 운동선수 등이 장애나 역경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를 들을 때 모두가 감동하는 것은 그런 결과를 얻기까지 쏟아 부은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때문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하지만 모든 수고가 결실을 얻지는 못한다. 젊음의 초절정기를 올림픽에 맞춰 최선을 다했더라도, 코로나19 같은 천재지변을 만나거나 순간의 부상, 심판의 편파 판정, 정치적 갈등, 천재적인 경쟁자의 혜성 같은 등장 등 어이없는 상황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세상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는 유익은 그저 ‘약간의 유익’일 뿐이다. 육체의 연습인 γυμνασία(굼나지아: physical exercise, 트레이닝, 훈련)는 우리가 헬스장을 줄여서 짐(gym)이라고 부르는 말의 어원이다. 여기에 대비되는 개념인 영적인 훈련은 원어로 εὐσέβεια(유세베이아)인데 경건(敬虔)을 뜻한다. 영혼의 트레이닝,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예하고자 하는 끝없는 단련인 ‘경건’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약속(promise)이 있다고, 성경은 보증하고 있다.
운동선수나 연주가가 평범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분량의 노력을 쏟아 부어 아마추어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경지에 들어갈 정도만큼, 영적인 훈련을 강도 높게 하는 것을 ‘경건’이라 부른다. 기도와 말씀 읽기와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부단한 행동(act)인 ‘연습하라’고 명령했다.
사람은 아담 때부터 쉬운 것을 선호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한 선악과도 따먹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창3:6). 따먹으면 저절로 지혜가 생겨 하나님이 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와 허영으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이고 부추긴다. 무협소설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줄거리 패턴이 악당에게 패해 절벽에 떨어졌는데 죽지 않고 살아나 무슨 열매를 따먹어 보니 그게 엄청난 영약이어서 수련을 안 했는데도 무림의 절대고수가 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열광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낭비한 시간을 되돌리려면, 앞서 간 이들이 눈물 흘린 시간의 곱절 이상 힘이 든다. 하물며 경건의 훈련이랴. 적그리스도는 경건의 훈련을 건너뛰고 ‘대단한 경지에 오르는 비밀’이라며 선악과로 속인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로 미혹한다. 심은 대로 거둘 뿐이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갈6:7).
위 글은 교회신문 <6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