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80] 예수 부활의‘산 소망 ἐλπίδα ζῶσαν (엘피다 조산)'

등록날짜 [ 2021-03-16 16:10:51 ]

주의 이름으로 금세 다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로 충만하다가도 이내 인생의 막다른 길에 이른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는 세상에서 싸우는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대선지자 엘리야도 갈렙산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을 멸하고 3년6개월 된 가뭄을 멈출 단비를 내리는 기도응답을 받았으나, 얼마 안 가 왕비 이세벨의 살해협박에 도망해 하나님께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19:4)라며 낙심 어린 기도를 올려 드렸다. 오히려 위로가 되고 이해도 되는 장면이다.


삶의 버거운 순간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실까’,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걸까’, ‘나를 아시기는 하실까?’라는 두려움마저 문득 생길 수 있다. 방언을 말하고, 악한 영을 쫓아내고, 성령의 은사와 특별한 이적을 경험한 사람도 그럴 수 있다. 신학을 많이 공부했어도 그럴 수 있고 때로는 힘겨운 목회의 도전 속에서 깊은 회의가 들어 올 수도 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겉으로는 세상풍파 같으나 실상은 ‘사단의 회(會)’(계2:9)에서 다양한 권력, 제도, 풍속, 관계 등을 이용하고 가난과 질병, 사고, 밤을 넘기는 분노(엡5:26)와 상처가 만든 온갖 정신적·육체적 상해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다 잃고 다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붙들 한마디가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김받은 것은 ‘믿음’ 때문이라고 공식처럼 알고 있지만 그는 무엇을 믿었던 것인지를 정확히 봐야한다. 성경은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롬4:17)라고 명시했다. 또 우리에게 적용되는 이유도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이것이 믿음의 출발점이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시작점이다. 베드로전서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라고 기록했는데 ‘산 소망(ἐλπίδα ζῶσαν, 엘피다 조산)’에서 ‘살아있는’을 의미하는 ‘ζῶσαν(조산)’이 함축하는 바는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실재로서의 ▲끝없이 그치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는 ▲현재도 운동력 있고 작동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모든 궤계로 믿음의 축을 흔들고자 할 때 가장 강력한 카운터펀치 중 하나는 이것이다. “그래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한 의인이 회개하며 주를 찬양하며 받은 모든 약속,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모든 축복의 약속을 놓치지 않는 카운터펀치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위 글은 교회신문 <6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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