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1-04-13 05:54:03 ]
어떤 새신자가 교회에 처음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목사님과 주변 성도들이 “주 예수님만 바라보세요”라고 말하는 권면에 큰 감동을 받았다. 주님만 바라봐야 하는데 눈으로 볼 수 없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볼까 고민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聖畫)를 눈이 닿는 곳마다 여러 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참 애틋하고, 주님께서도 미소 지으실 만한 장면이지만 성화는 화가들의 상상도이며 주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시므로 다소 엉뚱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예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을 각자의 심령에 보내 주신 것으로 충분했기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품을 보존하고 남기려는 수고를 일절 하지 않았다.
히브리서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 당부했다. 여기서 “바라보다”는 원어로 ἀφοράω(아포라오)로 쓰여 있는데 이를 원어대로 직역하면 ▲시선을 다른 곳에서 떼라 ▲목표하는 것에서 시선을 떼지 말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우리 주님은 이 ‘바라봄’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중략)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중략)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1~24). 마태복음 6장 19절부터 34절까지는 우리 주님께서 바라봄의 원리를 직접 설명하신다. “공중의 새와 들의 풀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먹이고 입히시며 사람의 마음 두는 풍족함과 사치가 아무것도 아닌데 왜 재물(맘몬=돈의 신, 마귀)을 섬기면서 이로 인해 생기는 세상 염려의 종이 되는가. 눈을 밝혀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속고 있는 어둠을 깨닫는 눈을 뜨라”고 알려 주셨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지금 당장 당신이 가장 신경 쓰고 몰두하는 행위를 멈추고 ▲지금 상황을 깨달으라는 표현이 “와치 아웃(Watch out)!”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의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항상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묻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면한 문제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지배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인가?” 예를 들어 병원에서 불치병 판정을 받으면 누구나 ‘병’만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은 “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병인가? 아니면 채찍에 맞아 주심으로 나를 낫게 하실 예수님인가?”라고 끝없이 되묻는 노하우(know-how)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업과 생계인가? 주님인가?”, “합격인가? 주님인가?”, “목회인가? 주님인가?” 끝없는 이 질문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출발점이요, 주님만 바라보게 할 팁이다. 이후의 일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온전케 하실 것이므로 키를 한 자도 늘리지 못하는(마6:27) 내가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행동의 공통점은 ‘기도와 찬양’일 수밖에 없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63:2~3).
위 글은 교회신문 <69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