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85] 목숨을 내놓는 사랑

등록날짜 [ 2021-05-26 10:03:14 ]

사랑 많은 우리 주님은 전능자이신데도 제자들과 같이 먹고 자고 살면서 개개인의 특성을 담은 ‘애칭’을 붙여 주셨다. 예수께서 지어주셨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도마는 ‘쌍둥이’라는 뜻의 ‘디두모’(요11:16), 가룟 유다가 아닌 유다는 ‘사랑스런 아이’라는 ‘다대오’였다. 반면 ‘사랑의 사도’로 알려진 요한은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더불어 별명을 직접 지어 주셨는데 ‘우뢰의 아들’(막3:17)이라 붙여 주셨다. 영어로는 ‘Sons of Thunder’, 곧 ‘천둥의 아들들’인데 이 말은 무슨 천둥번개를 부리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칭 “성질머리 사납다”란 의미다. 그 성격이 엿보이는 대표적 장면이 한 사마리아 마을이 예수님 일행을 못 들어가게 하니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나이까”(눅9:54)라고까지 했으니 저 사람이 ‘사랑의 요한’이 맞나 싶다.


무엇이 이런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180도 바꾼 것일까. 요한은 성령으로 창세 전 태초의 일을 깨달은 자다(요1:1). 전능자가 육신을 입고 이 우주공간 안으로 지극히 낮은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오셔서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영원히 셋째 하늘(고후12:2)에서 살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계획을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음을 알았다. 구원의 언약을 구약부터 오래도록 미리 말씀하셨고, 어떠한 핍박과 인간들의 배신에도 지키셨으며 부활하셔서 이루셨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지막 천계의 진입과 영원한 불못에 빠질 마귀와 수하들 그리고 완전히 소멸될 지금의 천지를 미리 다 보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온 생애를 엿본 영광을 입은 자, 성령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한 자가 깨달은 결론은 무엇일까.


결국에 남는 의미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15:12) 이것이다. 이 세상, 우주는 하나님 형상의 모양대로 하나님의 지정의를 닮은 인간들이 아무리 업적들을 쌓아도 천국의 모형일 뿐이다. 마치 아무리 초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AI) 기술로 현실 이상의 가상공간을 만들어 냈다 할지라도 서버(우주)의 전원만 차단하면 한순간 전부 소멸하는 것처럼. 그 속에서 사도 요한이 본 진실, 진리는 이러하다. “비록 지금은 너희가 몰라서 아무리 나를 침 뱉고, 조롱하고, 배신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를지라도, 내가 너무 아프고 나조차 너무 힘들어 십자가를 지고 걸을 힘마저 없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 죽는 게 좋아서 내가 선택한 길이란다.” 그것만큼은 결코 모형이 아닌 완전한 진리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것이 설령 사역이라도 작은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수단이 병행된다면 주님의 방법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투쟁방법에 다르지 않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의 원문은 φείλομεν πρ τν δελφν τς ψυχς θεναι인데 영어로 직역하면 “owe to brothers for the life to give up”(목숨을 포기할 빚을 졌다)이다. 내 탑이 아무리 높아도 이 모형 세상 이후 주님 앞에서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을 진실은 사랑이며(고전13:8), 주님 앞에서 그분의 공의 앞에 두렵지 않을 사람은 많은 업적을 쌓은 자가 아니라 아무도 희생치 아니하고, 형제를 포기하지 않고, 분내지 않으며, 주님처럼 사랑한 자다(요일4:18).




위 글은 교회신문 <7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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