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112] ‘악담’하는 자가 받는 보응

등록날짜 [ 2022-06-20 20:06:12 ]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대로 우리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의 영을 부여받은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성품대로 말의 힘을 갖고 있고, 성경은 사람이 말을 통해 어떻게 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지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109:17~18).


저주하는 말의 힘은 저주를 퍼붓는 자에게로 돌아간다. 저주는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죄인지라 그 삯인 사망(롬6:23)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저주가 입에 배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 입에 밴 비속어들도 다 저주다. “빌어먹을”, “망할”은 애교다. 모두의 입에 배어 자음 약어로 쓰는 “ㅅㅂ”도 있고, 영어 욕들도 입에 배서 ‘예수님(Jesus)’과 ‘하나님(God)’ 또는 ‘Holy(거룩한)’ 등을 모독하는 단어와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시편 109편 20절에는 그같이 저주가 임하는 것이 “악담하는 자가 받는 보응”이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 원어  ער רבד(다바 라)’는 “악하게 말하다”인데 여기에서 ‘악’을 뜻하는 ‘라’는 단지 ‘나쁨’(evil)만 의미하지 않고 ‘오해’나 ‘잘못됨’, ‘상처 줌’까지 포함한다. 오보투성이인 뉴스들, 알고리즘으로 생각을 몰아가는 유튜브,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남의 말을 옮기기나 지적질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쌍한 이들, 심지어 베갯머리에서 부부간에 나누는 남의 말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끔찍한 통로가 된다.


주님께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라고 하셨는데 하물며 악담이랴. 복 없는 집안은 가족들이 모여서도 아버지는 정치인 욕하고 엄마는 학부모 욕하고 자식은 친구 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욕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를 바꿔 보려 해도 잘 안 되는 까닭은 시편 말씀처럼 기름이 뼛속까지 스며들듯 배어 버렸고 남의 말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이다.


마귀는 그렇게 저주가 임하게 만들고 저주의 굴레로 결박해 하나님과 갈라놓고 궁핍과 고독 속에 자신들이 저주한 대로 ‘빌어먹을’ 인생, ‘망할’ 인생이 유전되게 한다. 이런 인생은 친절을 베풀어 보려 하고 가식을 부려 보더라도 번번이 탄로 난다. 은연중에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나도 저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빌2:3) 하신 주님 명령을 흘려 듣기 때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복의 원리를 알아서 남 말하는 자의 곁에 가지 않는다. 혹 미혹이 들어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중보기도를 쉬지 않으며 말씀의 약속을 따라 “축복하기를 기뻐한 자”(시109:17)에게 떠나지 않는 복의 은혜를 누린다. 그러므로 ‘남의 말’에 대해서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심이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선을 이루는 길이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3:6). 



위 글은 교회신문 <7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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