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알파와 오메가·117]‘밤낮 참소하던 자’

등록날짜 [ 2022-08-30 20:11:55 ]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말은 세뇌 과정을 반복해 세뇌하는 자의 의도대로 상대가 믿고 행동하게 만드는 지배 방식이다. 당하는 사람이 무기력에 빠질수록 가스라이팅의 파괴력은 급증한다. 성경은 마귀에 대해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계12:10)라고 말씀하신다. “밤낮 참소하던 자”의 헬라어 원문인 ‘ κατηγορέω(카테고레오)’도 쉴 새 없이 기소, 고소, 고발, 혐의를 제기하는 자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검찰에는 불려 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혐의만으로도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지각이 생기는 유아기부터 거짓말을 어떻게 배우는가? 아이러니하게 혐의와 기소를 피하려는 몸부림이다. 늦게까지 일한 후 귀갓길에 배우자가 어디쯤이냐고 전화하면 막 출발해 놓고도 거의 다 왔다고 습관적으로 부풀리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인생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집값이 그렇게 오르는 동안 셋집으로 갈아탔지’, ‘공부든 뭐든 진득하게 하는 게 없었지’, ‘배우자라고 구박만 하지 도와주는 게 뭐가 있나’, ‘직장에서 쫓겨날 만도 하지’, ‘교회에서도 꾸중만 듣는 어두운 데로 쫓겨날 영혼이네’ 등. 무수히 나열되고도 끝이 없을 무력함, 죄악들, 직장과 가정과 교회에서 깨지는 현실 앞에서 쓰러지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바로 죄의 무한궤도에서 끝없이 참소하는 마귀의 가스라이팅이 제대로 먹힐 무기력의 순간이다. “봐, 네까짓 게 무슨 자격이 있는가. 넌 저주받았어. 벌 받은 거야”라고. “그냥 죽으라”고도 할 것이다. 배우자, 부모, 세상을 탓하게 만들고, 못난 자기 자신을 경멸하던 습관을 폭발시킬 것이다. 가정폭력과 폭언으로 증오와 원망의 배출구를 삼게 하고 술, 도박, 복권, 복술(점) 같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들에 의지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나의 고통 앞에 침묵하시는 듯한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깊은 단절과 원망을 쌓게 해서 영혼을 사냥할 것이다.


기억할 것은 이런 순간은 모두에게 닥친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넘어지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넘어진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냥 두었다면 언젠가 어그러져(히12:13) 끝장났을 관절을 고침받았기에 의인인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도무지 소망이 없는 순간의 대처 방식에 있다. 절망의 순간에 의인은 기억한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마귀가 뭐라고 하든 의인은 주님 앞에서 운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가 고작 진토(רפָעָ, 아파르)에 불과하고 내가 지음받을 때부터 내 처음과 모든 것, 곧 체질(רציֵֶ, 얏세르)을 이미 다 아시는 분이면서도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대신 죽어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하는 상한 심령의 예배와 정직한 애통함으로, 벌레 같은 나의 눈물로 회개와 감사를 올려 드리자.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사41:14, 새번역).




위 글은 교회신문 <7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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