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10-17 19:54:40 ]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더 들으려 하고, 불편한 진실은 피하려 든다. 심리학 용어로 이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공회에 해를 받아 죽임을 당하나,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것도 세 번 이상 미리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을 받기 전이라 해도 제자들은 끝내 몰랐다. 왜 그랬을까.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막9:31~32). 여기에서 제자들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현상을 보인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 인지부조화 상태가 되면 (1)피하고 (2)사실을 부정하며 (3)사실의 효과를 축소하는 방어를 작동시킨다. 제자들의 모습이 딱 그랬다. 죽으심과 부활의 말씀을 듣고 “되묻기도 무서워”하거나, 베드로처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라는 부정(delegitimizing)의 정석도 나온다.
오직 한 사람만 달랐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나사로를 다시 살린 사건은 대제사장 가야바로 하여금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요11:50),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위선자들의 창끝으로 스스로 걸어가시는 죽음의 길을 느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에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부터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으면서도 눈물로 적시고 또 적셨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14:8).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 주님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로마 병사가 지키는 살기등등한 무덤에 들어가 가장 먼저 주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전파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14:9) 말씀대로 되었다.
인지부조화를 깨려면 방어기제가 아니라 아까운 향유 옥합을 내어놓듯 깨뜨림의 용기가 필요하다. 바리새인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요12:42)라는 말씀대로 많은 제자 등 그 남자들과 마리아의 차이는 모든 말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인 ‘φοβέομαι(포베오마이)’ 곧 “두려워함”이다. 이단이나 잘못된 집단도 교주나 리더가 윤리적으로 타락하거나 행위, 교리가 성경과 모순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해도, 인지부조화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자기들의 두려움을 정당화한다. 그 생리를 알기에 리더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가스라이팅까지 하면서 집단적으로 인지부조화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많은 이가 성경 속 향유 옥합을 단순히 ‘헌금’이라고 여기지만 실상 향유 옥합을 깨뜨림은 성경에 비추어 감동하시는 성령께서 증거하시고 감동하시는 양심을 따라, 사람의 영광이나 지위도 잃어버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내가 쌓은 모든 것이라도 깨뜨림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