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11-01 20:58:40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이 말씀을 읽고 심한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면 말씀이 안 믿어졌거나, 율법을 지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 바리새인과 같은 부류거나, 아니면 말씀의 뜻을 알든지 주님 은혜를 통달한 경우 중 하나이다.
혹여나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불렸다고 하나, 내 행위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추궁은 별도로 당한다? 그것도 무론대소한 만인 앞에서? 빌리 그레이엄을 능가하는 사역자거나 대단히 성화된들 견딜 수 있을까? 이 말씀은 아래 문장들과 이어서 조심히 봐야 한다.
처음에 나오는 행위를 기록한 ‘책들(βιβλιοις, 비블리오스)’은 심판을 위한 책들로서 ‘복수’로 되어 있다. 또 ‘생명책’만은 한 권, 곧 ‘βιβλιον(비블리온)’으로 단수이다. 그다음에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라고 할 때의 책은 ‘복수’로 나오는 비블리오스, 곧 처음의 그 책들이다. 여기까지 생명책을 읽고, 심판을 위한 책도 읽는다는 설정은 없으며 이어지는 구절에서 더 명확해진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3~15). 곧 복수로 되어 있는 심판의 ‘책들’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못의 둘째 사망으로 가는데, 이들은 “생명책(단수)에 기록되지 못한 자”라고 못 박는다.
이는 주님의 약속과도 일치한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우리 주님께서는 생명의 부활(ἀνάστασις ζωή, 아나스타시스 조에)과 심판의 부활(ἀνάστασις κρίσις, 아나스타시스 크리시스)이 있다고 하셨다. 생명책에 기록되어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자가 심판의 부활을 겸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다시 한번 확인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
‘부활하더라도 행위를 따라 만인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원수의 참소이며, 참 부활의 산 소망 앞에 흔들리지 않도록 ‘진실로 진실로’를 두 번이나 쓰셨다. 또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음은 당연하기에,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선한 일을 행한 자”라는 생명의 부활의 등식을 자연스레 완성하셨다. 바울도 자신의 동역자인 글레멘드와 부녀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할 때(빌4:3), 그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주께서 죄를 가리며 기억치도 아니하는 은혜. 그 사랑과 은혜만이 살길임을 알고 그 사랑이 심장과 사지를 움직이는 것이 믿음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77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