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8-03 14:16:49 ]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사회
결혼·출산·양육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성경은 무분별한 성(性) 자유 아닌
가정 안에서 사랑을 말하고 있어
‘결혼과 성(性)은 별개 문제다.’ ‘성적 행위가 결혼 제도 안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구시대적이고 고리타분하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성(性) 개념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진화론자나 특히 *이기적 유전자 이론(*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 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의 한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성적(性的)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당연한 행위이기에, 인간은 성적 행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결혼과 상관없이 성적 행위 자체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적 행위가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고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창2:24;마19:5;엡5:31). ‘성적 행위’는, 결혼이라는 연합을 통해 탄생한 가정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의 결과는 자녀 생산이라는 축복이 따른다. 하지만 결혼 테두리 밖에서 행해지는 성적 행위는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회다. 세상에서도 가정이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매우 중요하다. 가정은 부부와 가족의 사랑을 경험하고 키우며,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유일한 곳이다. 가정 안에서 자녀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사진설명>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 에서 2016년 전국 만 19~59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혼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응답이 50.5%에 이른다. ‘비혼’은 ‘독신’과 달라 연애와 동거, 미혼부·미혼모, 공동체 생활 등 결혼 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살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절대적 결혼관이 깨지고 있다.
절대적 기준을 상실한 사회는 절대적 기준에 목말라 한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동성 결혼을 합헌 판결한 판사의 판결문에 센델 교수가 가한 날카로운 반박이다.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의 요지는 “성적 행위와 배우자 선택의 자유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센델 교수는 동성이든 이성이든 배우자 선택이 개인의 자유에 해당한다면, ‘왜 국가가 결혼 제도를 관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모든 국가가 결혼 제도를 관리한다. 그 이유는 가정이 그 국가를 유지하는 기본 단위이고, 그 기본 단위가 건강하지 못하면 국가 사회가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가정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동성(同性)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판결은 모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동성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판결하는 것”은 국가가 결혼 제도를 관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사법기관이 부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와 사회는 결혼 제도를 통해 존속할 수 있다. 결혼해서 가정당 2.1명 이상 자녀를 낳아야 그 나라 인구가 유지될 수 있고, 각 가정에서 정신 건강하고 사회성 강한 자녀를 성장시켜야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안 낳으면, 결국 그 나라는 없어진다. 우리나라 인구 예측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는 2100년에 20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고, 2300년이면 소멸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결혼해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할 때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결혼과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돼 있다. 결혼에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하나 되기 원하시는 뜻이 담겼다. 교회와 예수님이 하나 되어야 하듯, 부부가 주님 안에서 하나로 연합돼야 한다. 또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수고와 죄를 범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신 희생과 닮았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인간을 먼저 사랑하시고 아들을 희생하신 사랑에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결혼과 자녀 양육은 어렵다. 결혼과 자녀 생산·양육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던 사회에서는 힘들어도, 아무리 위기에 부딪혀도 부부관계를 깨뜨리지 않았고, 자녀를 최우선으로 해서 돌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결혼과 가정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깨졌다.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관계가 냉랭해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배우자 외에 애인을 둬도 괜찮고, 부부관계가 힘들면 이혼하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자기 자녀를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는 부모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아시아 국가 중 1위다. 이혼을 두려워해 결혼하지 않고 동거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닌 행동에서 배우고, 그대로 행동한다. 문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문제 아이가 되고, 문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건전한 가정을 꾸리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결혼 제도를 근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이루려 하기보다 자신들이 정한 목적만 달성하려 한다면, 가정이 안식처가 아닌 전쟁터가 되기 쉽다. 결혼은 목표를 가진 제도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체의 모델이다. 결혼만이 하나님의 자녀를 늘리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모든 생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오직 결혼을 통해서만 이런 일들이 이뤄질 수 있다.
결혼해서 가족 관계를 이룰 때,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결혼해서 부부간에, 부모 자녀 간에 ‘주는’ 사랑을 배우고 경험한다. 가정에서 사랑받는 경험을 해야 사랑을 ‘주는’ 성숙에 이른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면서 부부간의 사랑을 정의한 에베소서 5장 말씀의 핵심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 같은 사랑을 하라는 의미다. 주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섬기러 오신 겸손한 사랑이다. 그렇기에 아내만 남편에게 복종할 것이 아니라,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남편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영적 권위를 갖고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 되신 것처럼 아내의 머리 역할을 해야 한다. ‘남편’은 오직 사랑과 희생으로만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도우라고 주신 지혜로 남편을 지배하거나 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남편을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가장(家長)으로 인정해야 한다. 남편이 지혜롭고 정의로운 결정을 하게 도와야 한다.
또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 됐다면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 자녀도 그 문제 속에서 성장한다. 자녀를 잘 양육하는 방법은 부부간에 사랑이 넘치는 것이다. 자녀도 그 넘치는 사랑 속에서 양육될 수 있다.
결혼과 자녀 양육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하나님께 독신의 은사와 사명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결혼과 자녀 양육은 힘들지만, 인생에서 가장 복 받은 것이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성적 행위는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주신 축복이고, 자녀 출산도 하나님의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이은일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한국창조과학회 전임 회장(6대)
위 글은 교회신문 <537호> 기사입니다.